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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구들을 막기 위해 지어진 성, 금오산성
    금오산성은 고려 후기 금오산에 축조한 이중의 석축 산성으로 금오산도립공원 내에 있다. 외성은 해발 약 350m에 위치하여 금오산 입구와 대혜폭포를 연결하는 케이블카 노선 중간 지점에 있으며, 내성은 해발 약 850m의 성안 분지를 둘러싼 능선에 있다.      금오산성을 처음 쌓은 연대가 문헌상에 있지 않아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 후기 왜구들이 내륙 깊숙이까지 빈번히 쳐들어와 인명을 살상하고 노략질을 일삼자, 인근 선산·인동·개령·성주 백성들이 금오산에 피난하여 왜구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쌓고 군병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이곳에 군량과 무기를 비축해두었던 군창까지 두었다고 한다.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수축이 이루어졌는데, '태종실록'에 1410년에 수축했다고 기록된 것이 있고, '경상도속찬지리지', '선산부조'에 1413년에 수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180여 년간 문헌상 기록이 없어 산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에서 임진왜란을 맞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4년 뒤인 1595년 금오산성과 천생산성을 수축하여 대진을 만들어야 할 것을 청하였고, 11월 도체찰사 이원익이 비변사에서 “산성에 들어가 지키게 하되 금오·천생·부산·악견·공산·용기산성을 먼저 지킬 것이고, 화왕산성을 급히 보수할 것”이라 하였다. 이에 선조는 도체찰사 이원익과 각 도 감사에게 이 뜻을 알리고 산성을 지키도록 하였다. '일선지' 금오산성조에 보면 단기간에 산성을 개수하는 데 9개 주현의 민과 군이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1597년 7월 왜군이 재침하여 정유재란이 일어났으나, 1595년과 1596년 두 해에 걸쳐 각 산성을 수축하여 방책을 튼튼히 하고 병력을 강화하여 왜군도 쉽사리 공략하지 못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598년 임진왜란 7년 동안 후반 4년 동안 금오산성의 역할은 지대했다. 그 후 41년 뒤인 1639년 외성을 쌓는 확장 공사가 실시되어 이중의 산성이 되었고, 1868년에 새로 고쳐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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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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