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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인이 사랑하는 문인 김만중 선생 유허, 노도
    서포 김만중 선생 유허와 노도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글로, 문학으로 승화시켜온 산 증인!   남해인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무인이 이순신 장군이라면, 문인으로는 서포 김만중이 아닐까. 상주면 벽련마을에서 나룻배로 건너가면 닿을 수 있는 섬, 노도로 유배되어 온 문인 김만중은 두고 온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글로, 문학으로 승화시켜온 산 증인이다. 한글로 쓰여진 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저자이자 수필집이자 평론집인 ‘서포만필’의 주인공인 김만중이라는 이름은 국문학 역사에 있어 우리 한글을 향한 깊은 애정이자 두고 온 그리움에 대한 진한 애환이자 혈혈단신 오로지 글쓰기에 전념한 채 버텨온 인간극복의 상징이기도 하겠다.   새벽빛을 닮은 ‘맑은 연꽃’이란 뜻을 지닌 벽련마을. 이 마을은 벽작개 혹은 백련이라 부르기도 했다. 행정상 벽련마을에 속하는 ‘문학의 섬, 노도’는 그 자체로 고고하게 피어오른 크다 큰 연꽃을 닮았다. 벽련마을 선착장에서 12명을 실어나를 수 있는 나룻배 역할을 해주는 도선을 타면 5분이면 당도하는 곳, 노도는 그야말로 손끝에 닿을 듯, 폴짝 뛰어오르면 순간이동 할 것 같은 아련한 거리의 유인도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처절한 외로움을 겪었으리라.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뭍을 두고, 벗어날 수 없는 유배객의 생이라니. 서포 김만중은 1689년부터 3년간 남해 노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배를 젓는 노를 많이 생산했다고 하여 ‘노도’라 불린다고 하는 전설 또는 섬의 생김새가 삿갓을 닮았다 하여 ‘삿갓섬’이라고도 불리는 노도. 실제로 가보면 붉은 동백꽃 군락이 가장 인상적인 이곳 노도는 멀리서 보면 금산, 호구산, 설흘산 아래 포근히 안겨 있는 형상이다. 조선 후기 정치가로서 소설가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대문호 서포 김만중의 발자취가 서포유허비에 남아 있다. ‘창망한 바다 한가운데 한점 신선의 섬 노도는 김만중 선생이 숙종15년(1689)에 위리안치되어 불후의 국문소설 구운몽을 집필하시고 동18년 56세의 일기로 서거하셨다’고 새겨져 있는 유허비 뒷면의 글을 읽노라면 처연해지기도 한다. 이곳 노도는 문학의 섬으로의 긴 채비를 마치고 정식개장만을 앞두고 있다.    이곳 노도는 문학의 섬으로의 긴 채비를 마치고 정식개장만을 앞두고 있다. 2011년부터 시작한 ‘노도문학의 섬 조성사업’은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였던 노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서포의 문학정신을 결합한 관광자원 개발 사업으로 상주면 양아리 노도 면적 16%인 해당하는 1만9350평 부지에 서포문학관, 민속체험관, 작가창작실, 서포 초옥, 야외전시장, 생태연못 등을 두고, 문학애호가들과 걷기애호가들의 두드림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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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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