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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시대 수백명의 승려드링 머물던 대표사찰터, 만복사지
    만복사지는 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고려 문종 때 지어진 만복사의 터로 기린산을 북쪽에 두고 남쪽으로 넓은 평야를 둔 야산에 위치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권지39, 남원도호부 [불우조(佛宇條)]를 보면, “기린산 아래에 있는데, 동쪽에 오층전이 있고 서쪽에 이층전이 있으며, 전 내에는 동불이 있는데, 길이가 35척(약 10.6m)이다. 고려 문종 때에 창건되었다”고 기록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숙종 때에 간행된 [용성지(龍城誌)]의 내용으로 보아 만복사에는 5층과 2층으로 된 불상을 모시는 법당이 있었고, 그 안에는 높이 약 10m의 불상이 있었으며, 대웅전을 비롯한 많은 건물들과 수백 명의 승려들이 머무는 큰 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복사 내에는 대웅전, 약사전, 장육전, 영산전, 보응전, 종각, 천불전, 나한전, 명부전 등의 불전이 있었으나 정유재란(1597)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만복사는 불타버리고 말았다.     남원부사 정동설(鄭東卨)은 두 개의 방을 중창하여 승려들이 그곳에 머무르면서 사찰을 수호할 규칙을 만들게 하였다. 도선 국사는 남원부의 자리를 보고 사찰을 설립하여 불상을 조성하고 탑을 세울 것이며, 축천에 철우를 설치할 것이며, 골회봉에 철환을 설치할 것이며, 용담과 호산에 탑을 세울 것이며, 선원과 파근에 사찰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구려식의 절 배치를 따르고 있으며,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사찰의 하나로 연구 가치가 크다.     현재 절터에는 고려시대의 오층석탑(보물 제30호)과 석좌(石座, 보물 제31호),당간지주(幢竿支柱, 보물 제32호),석불입상(보물 제43호), 석인상(石人像) 등의 유물과 초석(礎石) 등 많은 석조물이 남아 있다. 또한 발굴조사 때 토기를 비롯한 청자, 백자 등의 기편(器片)과 금동불입상, 수막새 583점, 암막새 853점 등 다량의 기와가 출토되어 고려시대 미술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주소 : 전북 남원시 만복사길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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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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