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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전사벌왕릉, 사벌국의 유일한 왕이 잠든 곳
- 이름이 다소 생소한 사벌국. 사벌국은 삼국시대 당시 상주 지방에 약 10여 년간 세워졌던 나라다. 사벌국의 시초이자 마지막 왕이었던 박언창의 왕릉, 오랜 역사를 품고 깊게 잠들어있는 상주 전사벌왕릉을 소개한다. 상주 전사벌왕릉은 상산 박씨의 시조인 박언창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능으로, 박언창은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왕자 중 5번째 아들이다. 경명왕은 박언창을 사벌대군으로 책봉하고 백제의 견훤으로부터 사벌주를 수호하도록 했으나, 견훤으로 인해 본국이 위기에 빠지자 박언창은 사벌동을 본영으로 삼아 사벌국이라 칭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이후 11년간 이어진 사벌국은 견훤의 침공을 받아 패망하게 되었고 사벌국의 왕이었던 박언창은 전사벌왕릉에 묻히게 되었다고 한다. 넓은 잔디밭 위의 전사벌왕릉은 주변의 다른 유적들과 함께 구경할 수 있다. 왕릉 주변에는 비석이 둥글게 모여있고, 석탑, 숭의각, 영사전 등의 유적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다. 왕릉 옆의 석탑은 보물 제117호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이 탑은 상주와 문경 지방에 분포된 탑의 특징인 8매의 장대석으로 구축한 지대석과, 하층기단 면석을 고려한 단층 기단부를 갖추었다. 석탑 뒤로는 재실 영사전이 있고, 주변에는 숭의각 안의 신도비와 사벌왕릉사적비가 있다. 이 유적들은 비교적 최근에 세워져 깔끔하게 잘 관리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벌국의 왕릉으로 기록된 전사벌왕릉은 이 외에도 「상주군읍지」,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등에 기록이 남아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전사벌왕릉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었다. 전사벌왕릉을 구경하며 먼 옛날, 이곳이 어떤 곳이었을지를 짐작해 보게 된다. 상산 박씨의 시조 박언창과 그가 세웠던 사벌국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상주 전사벌왕릉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〇 위치 :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화달리 산44-1 상주 전사벌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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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전사벌왕릉, 사벌국의 유일한 왕이 잠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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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시] 전주에서 떠나는 테마 시간여행
- 조선 왕조 500여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상징 전주시. 전주는 볼거리 먹거리가 풍성한 여행지다. 도심을 떠나 훌쩍 시간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지나간 역사를 따라 전주로 가보자. 경기전 경기전은 조선왕조를 연 태조의 초상화, 즉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 지어진 건물이다. 전주, 경주, 평양 등의 어진 봉양처를 처음에는 어용전이라고 불리었는데, 태종 12년(1412년)에 태조 진전(眞展)이라 하였다가 세종24년(1442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이라 각각 칭하였다. ○주소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3가 102 전주향교 전주향교는 지금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고려 공민왕 3년(1354년)에 창건되어 조선 선조 36년(1603년) 순찰사 장만(張晩)이 좌사우묘지제(左社右廟之制)에 어긋난다고 조정에 품신하여 왕의 재가를 받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139 전주향교 한벽당 자연과 어우러진 풍류의 멋을 머금은 한벽당은 최승범 시인은 '한벽청연'에 담기었을 선비의 흥취와 그 아련함을 노래했다. 한벽당은 승암산 기슭인 발산 머리의 절벽을 깎아 세운 누각으로, 병풍바위 아래 아담한 정자가 한벽당이다. 과거에는 바위에 부딪친 안개를 '한벽청연'이라 하여 전주 8경의 하나로 꼽았다.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오목대, 이목대 한옥마을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 승암산 자락에 자리 잡았으나 전라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맥이 끊긴 나지막하게 솟은 펑퍼짐한 언덕바지, 기린로에서 태조로를 따라 좌측으로 보이는 곳이 오목대이며, 오목대와 연결되어 있는 육교 건너편으로 70m쯤 위쪽으로 가면 승암산 발치에 태조 이성계의 5대조 목조 이안사가 전주를 떠나기 전에 살았던 구거지임을 알리는 이목대가 자리잡고 있다.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 산1-11 남고산성, 동고산성 전주에서 특별한 여행을 원한다면 동고산성과 남고산성을 찾아 견훤의 숨결을 찾아보면 어떨까? 동고산성과 남고산성. 백제의 부흥을 꿈꿨던 견훤의 숨결과 이야기가 담긴 동고산성과 남고산성은 복잡한 휴가지가 아닌 후백제의 역사부터 조선시대 역사까지 찾아 떠나볼 수 있는 특별한 나만의 여행지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는 역사탐방코스다. ○주소 : 전북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산228 치명자산 성지 전주한옥마을 동남쪽 가파른 산등성이. 우뚝 세워진 십자가가 선명하게 보이는 치명자성지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명소이다. 치명자(致命者)는 "목숨을 바친 자" 라는 뜻으로, 승암산과 중바위로 불리던 이곳에 '치명자'라는 말이 붙여진 것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가톨릭신자에 대한 존경의 의미가 담겨 있다. 치명자산에는 신유년 천주교박해로 유항검의 가족7명이 순교하여 합장돼 있다. ○주소 : 전주시 완산구 바람쐬는길 89 (사진출처 : 전주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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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시] 전주에서 떠나는 테마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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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전사벌왕릉, 사벌국의 유일한 왕이 잠든 곳
- 이름이 다소 생소한 사벌국. 사벌국은 삼국시대 당시 상주 지방에 약 10여 년간 세워졌던 나라다. 사벌국의 시초이자 마지막 왕이었던 박언창의 왕릉, 오랜 역사를 품고 깊게 잠들어있는 상주 전사벌왕릉을 소개한다. 상주 전사벌왕릉은 상산 박씨의 시조인 박언창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능으로, 박언창은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왕자 중 5번째 아들이다. 경명왕은 박언창을 사벌대군으로 책봉하고 백제의 견훤으로부터 사벌주를 수호하도록 했으나, 견훤으로 인해 본국이 위기에 빠지자 박언창은 사벌동을 본영으로 삼아 사벌국이라 칭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이후 11년간 이어진 사벌국은 견훤의 침공을 받아 패망하게 되었고 사벌국의 왕이었던 박언창은 전사벌왕릉에 묻히게 되었다고 한다. 넓은 잔디밭 위의 전사벌왕릉은 주변의 다른 유적들과 함께 구경할 수 있다. 왕릉 주변에는 비석이 둥글게 모여있고, 석탑, 숭의각, 영사전 등의 유적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다. 왕릉 옆의 석탑은 보물 제117호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이 탑은 상주와 문경 지방에 분포된 탑의 특징인 8매의 장대석으로 구축한 지대석과, 하층기단 면석을 고려한 단층 기단부를 갖추었다. 석탑 뒤로는 재실 영사전이 있고, 주변에는 숭의각 안의 신도비와 사벌왕릉사적비가 있다. 이 유적들은 비교적 최근에 세워져 깔끔하게 잘 관리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벌국의 왕릉으로 기록된 전사벌왕릉은 이 외에도 「상주군읍지」,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등에 기록이 남아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전사벌왕릉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었다. 전사벌왕릉을 구경하며 먼 옛날, 이곳이 어떤 곳이었을지를 짐작해 보게 된다. 상산 박씨의 시조 박언창과 그가 세웠던 사벌국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상주 전사벌왕릉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〇 위치 :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화달리 산44-1 상주 전사벌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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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이 있다고 소문난 나주의 진산, 금성산
- 금성산은 해발 450미터의 낮은 산이지만 평야와 낮은 언덕이 많은 나주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금성산이 유명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외적을 방어했던 ‘금성산성’이 있기 때문이다. 금성산성은 고려 초에 견훤과 왕건의 싸움터이기도 했고, 삼별초의 나주공략에 맞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인 치열한 전쟁터였다. 금성산이 유명한 두 번째 이유는 신령스럽고 영험한 금성 산신과 당제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금성산 아래 계곡 등에서는 산신의 영험함을 얻기 위해 정성을 드리는 무속인들이 수 없이 많았다. 금성산이 명당이자 전국의 명산으로 인정받는 데는 이런 이유들이 숨어있다. 나주의 서쪽 능선을 구성하고 있는 금성산은 일찍부터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이 있다고 소문난 나주의 진산이다.금성산은 그 자락과 계곡마다에 나주인의 역사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영산강이 나주의 어머니라면 금성산은 나주의 아버지같은 산이다. 금성산은 수많은 나주의 인물을 낳았고, 적의 침입으로부터 나주 백성들을 안전하게 보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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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이 있다고 소문난 나주의 진산, 금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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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도 찾아와 기도했던 그 산, 담양 삼인산
- 대전면 행성리와 수북면 오정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564m이다. 산 북쪽에는 삼인동(三人洞)이라는 마을이 있다. 삼인산(三人山)은 몽선암(夢仙庵)으로 불러왔다. 지금부터 1천2백여 년 전 『견훤 난』때 피난온 여인들이 끝내는 몽선암 에서 몽골(蒙古)의 병졸들에게 붙잡히게 되자, 몽선암 에서 절벽 아래로 떨어져 몽골 병졸들의 만행을 죽음으로 항쟁했다는 것이다. 그 후 이성계(李成桂)가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자신(自身)의 등국(登國 = 임금의 자리에 오름)을 위해 전국의 명산(名山)을 찾아 기도하던 중 이성계(李成桂)의 꿈에 삼인산(三人山)을 찾으라는 성몽 끝에 담양의 삼인산(三人山)을 찾아 제를 올리고 기도하여 등극하게 되자 꿈에 성몽하였다 하여 몽성산(夢聖山)이라 하였다고 전해오고 있어 몽선산(夢仙山)이 오랜 세월 동안에 변하여 몽선산(夢聖山)이 되었다는 일설도 있어 주민들의 판단에 맡긴다. 애초 三人山의 명칭은 산의 형태가 사람人자 3자를 겹쳐 놓은 형국이라하여 三人山이라 이름하였다. 산 북쪽에 아래 있는 三人洞 마을은 1750년경(英祖) 무안(務安)에서 함양인(咸陽人) 유학자(儒學者) 박해언(朴海彦)이 풍수지리설을 따라 명당을 찾았던 곳이 삼인산(三人山이)다. 산세가 좋고 산아래는 만물이 태생하는 터가 자리 잡고 있어 정착하였다는 것이다. (또는 1800년경의 설도 있음) 三人山 아래의 중앙에 위치하여 三人洞이라고 이름하였다는 것이다. 주소 : 전남 담양군 대전면 행성리 산10문의처 : 061)380-3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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