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26(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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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시, 백제 역사 바탕의 종교문화유산 탐방로 개발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유인촌 장관은 3월 21일(목), 세계문화유산이자 백제의 역사 고도(古都)인 공주시를 방문해 다양한 종교문화유산을 탐방하고, 서부내륙권 광역관광개발사업* 대상지를 점검한다.   * 충남·세종·전북의 종교문화와 치유 요소를 결합한 지역 연계·협력형 관광진흥사업(’24~’26)으로 치유순례 상품개발, 비단가람 자전거길, 치유길 도시락 개발 등 추진 예정    유 장관은 종교와 호국, 역사라는 주제와 공주 지역의 종교적 문화유산, 역사, 문화자산을 연계해 지역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이번 탐방에 나서며, 관광 활성화, 청년 창업 등 지역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모색한다. 이번 탐방에는 마곡사 도계스님, 천주교 대전교구 김성태 신부, 공주제일교회 윤애근 목사 등 종교계 인사, 최원철 공주시장 등이 함께한다.    유 장관은 먼저 백범 김구 선생이 출가한 마곡사에서 ‘백범명상길’을 걸은 후 공주로 이동해 시범사업으로 조성하고 있는 ‘종교문화유산의 길’을 두 시간 정도 탐방한다. ‘종교문화유산의 길’은 ▴ 공주 지역 천주교 순교지인 황새바위 순교성지부터 ▴ 유학자 오강표가 1910년 경술국치에 분개해 자결한 곳인 공주향교, ▴ 1897년에 설립된 공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 성당인 공주중동성당, ▴ 1906년 설립되었으며, 유관순 열사 수학(1914년~1916년), 공주 지역 만세운동 주도 등 독립운동으로 알려진 영명중·고등학교, ▴ 공주 지역 최초의 감리교회로서 민족대표 33인 신홍식 목사가 재직했고, 현재는 공주 기독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공주제일교회, ▴ 527년 백제 성왕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당간지주만 남아있는 대통사지까지 이르는 도보 탐방로이다.     이번 탐방에 앞서 유인촌 장관은 3월 20일(수), 공주시의 문화기반시설인 국립공주박물관과 백제역사문화 거점지구인 공주문화관광지도 방문해 현안을 점검했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국가귀속문화유산의 모범적인 활용 사례인 충청권역 수장고 운영상황을 살펴보고, 관계자들에게 세계문화유산 백제의 국가문화유산을 적극 활용해 지역사회와 전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확대하는 데 적극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국립공주박물관 충청권역 수장고는 충청과 경기 등 백제권역의 국가문화유산을 ‘보이는 수장고’와 함께 다양한 체험행사를 운영해 단순히 소장품 보관기능을 넘어선 국가문화유산 활용방안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어 유 장관은 공주문화관광지 안 백제역사문화 거점지구 조성부지를 방문해 공주시의 문화관광 기반 사업 추진계획을 듣고, 공주의 대표 문화관광지인 무령왕릉과 공산성도 찾아 공주시의 문화유적 관광자원화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유인촌 장관은 “매력 있는 문화도시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공주시 관계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지역에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는 관광 기반시설을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며 “‘종교문화유산의 길’이 공주를 재발견하고 지역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탐구하는 데 중요한 사례가 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공주시가 추진하고 있는 역점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라며, 문체부도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 지원할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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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1
  • 땅 끝에 위치한 아름다운 절, 전남 해남군 미황사
      [해남달마산미황사 - 출처 : 문화재청]   대한민국 육지 가장 남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절로, 한국관광공사에서 '2019-2020 한국관광100선'으로 선정한 전라남도 해남군 미황사.   [미황사 대웅전 - 출처 : 문화재청]     '신라 경덕왕 때, 금인(金人)이 타고 있는 배가 달마산에 닿았고, 그 안에는 화엄경, 법화경, 비로자나불, 탱화, 검은 돌 등이 실려있었다. 의조 화상과 사람들이 배 안의 물건에 대해 의논하는 중에 검은 돌에서 검은 소 한마리가 나와 커다란 소가 되었다. 의조 화상은 꿈에서 금인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소를 앞세워 가다가 한번 누웠다 일어난 자리에는 통교사를 짓고 마지막으로 쓰러진 자리에는 미황사를 창건했다' 1692년(숙종18년), 미황사 사적비에 적힌 미황사 창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미황사 지하루 - 출처 : 문화재청]     미황사의 미(美)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황(黃)은 금인의 빛깔을 의미한다고 한다.     [대웅전 목조삼존불 - 출처 : 문화재청]     미황사는 과거 한반도에서 꽤나 유명한 사찰이었던 모양이다. 고려 시대 기록에 따르면 미황사가 위치한 달마산으로 중국의 학자와 관리들이 내왕한 사실이 담겨 있다. 또, 조선 전기에는 불사와 법회들로 활발했다고 한다. 불행히도 조선 선조 때 일어난 정유재란(1597년)으로 모든 전각과 기록까지 소실되었지만, 이듬해인 1598년, 만선이 미황사를 중건하고 서산대사의 제자들이 미황사로 내려오면서 조선시대 후기까지 중심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대웅전 내부탱화 - 출처 : 문화재청]     현재 미황사는 대웅전, 달마전, 응진당, 명부전, 세심당 등이 중건·복원되었고, 당간지주, 부도군, 사적비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미황사 대웅전은 보물 제947호로 지정되어 있고 내부에는 삼존불과 후불탱화가 걸려 있다. 법당 뒤편에는 목궤에 넣어둔 매우 상한 괘불이 있는데, 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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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8

여행 검색결과

  •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무덤으로 알려진 경주 오릉
      경주 오릉은 경북 경주시 탑동에 있는 능묘로 사적 제 172호이다. 1969년 8월 27일에 지정되어있으며 봉분 높이 10m 내외 지름 20m 내외이다.   신라 초기의 왕릉으로 시조인 박혁거세와 알영부인,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5명의 분묘라고 전해진다. 뱀 사(蛇)를 사용하여 ‘사릉’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야기에서 파생되었다. 박혁거세가 죽고 7일 만에 그 유체가 다섯 개로 되어 땅에 떨어져 이를 합장하려 했지만 큰 뱀이 나와 방해했고 그대로 다섯 군데에 매장했다는 것이다.   능 입구의 홍살문을 세운 기둥은 원래 당간지주로 이곳에 담엄사가 있었다는 설과 일치함을 보여준다. 오릉 인근에는 박혁거세에게 제사를 지내는 숭덕전이 있고 탄생설화와 관련된 나정이 존재한다. 한편 초창기 신라의 무덤양식이 아닌 돌무지덧널무덤으로 되어 있어 신라초기 왕족들의 무덤이 아니라는 견해도 전해진다.   현재 발굴조사가 실시된 바가 없어 각 능의 구조를 알 수가 없다. 경주일대에는 3세기 이전으로 올라가는 원형봉토분의 구조형식이 확인되지 않았다.         주변 인근에는 논밭이 있어서 조용한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또한 소나무와 많은 나무들이 관리되어 자라나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연못과 산책로가 있어 사색하기 좋은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러 가지 현실 문제로 복잡한 마음이 가득하다면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산책을 할 수 있는 고요한 분위기의 경주 오릉을 방문해 보자.   ○ 위치 : 경주시 탑동 67-1 ○ 이용문의 : 054-750-8614 반려동물 입장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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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24

추천관광지 검색결과

  • 간결한 모양의 춘천 근화동 당간지주
    근화동 당간지주는 춘천시 근화동에 있는 당간지주로 이 당간지주는 원위치에 원래 모습대로 동서로 마주 서 있는데 안팎 면에는 아무런 꾸밈새가 없는 간결한 지주이다. 안팎 면에 꾸밈새라곤 전혀 없이 소박한 모습의 간결한 지주가 2단의 높직한 기단 위에 서 있는데, 각 변의 모서리를 약간씩 누그러뜨려 장식 의장을 보인다. 꼭대기쯤에서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내려오며 활 모양의 선을 그리고 있는데, 바깥쪽에서 보면 확연치 않으나 앞쪽 혹은 뒤에서 보면 꼭대기 부분 바깥쪽 4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원 모양의 선이 어렴풋이 보인다.     주소 : 강원도 춘천시 당간지주길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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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04
  • 천년의 고찰, 만수산 무량사
    천년고찰 무량사는 시간도 지혜도 세지 않는 무량의 도를 닦는 곳으로 창건에 대한 내용은 신라 말에 범일국사(梵日國師, 810~889)가 세워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다고 전해지나 자세한 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신라 말 고승 무염국사(無染大師, 801~888)가 일시 머물렀고, 고려시대에 크게 다시 지어졌다. 무량사는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살해한 뒤 임금이 된 것을 비판하며 평생을 은둔한 천재시인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을 머물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때 조선시대 명승 진묵대사(震默大師, 1563~1633)도 거처했었다. 임진왜란 때 무량사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탔으며 극락전은 그 후 다시 세웠다. 또한 왜란 이전에는 영산전(도문화재자료 제413호)과 명부전(도문화재자료 제389호) 등의 전각 명칭은 보이지 않고 극락전(보물 제356호)을 위주로 한 기록만 보일 뿐이며, 당간지주(도문화재 제57호) 및 석등(보물 제233호)과 무량사 오층석탑(보물 제185호) 역시 고려초기의 양식을 지녀 고려시대 사찰이라 여겨진다. 그 외에도 김시습영정(보물 제1497호), 무량사미륵불괘불탱(보물 제1265호) 등 많은 유물이 있다. 극락전은 외관은 2층 구조이나 내부는 위 아래가 트여 있는 이른바 통층구조의 특징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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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19
  • 삼국시대 사찰의 모습을 간직한 김제 금산사
    임진왜란 이전의 기록은 모두 소실되어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등을 인용하여 사적기(事蹟記)가 만들어졌는데, 금산사의 창건은 600년(백제 법왕 1)에 왕의 자복(自福)사찰로 세워진 것이라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지금까지 전하는 바는 진표(眞表)가 762년(신라 경덕왕 21)부터 766년(신라 혜공왕 2)까지 4년에 걸쳐 중건(重建)하였으며, 1069년(문종 23) 혜덕왕사(慧德王師)가 대가람(大伽藍)으로 재청하고, 그 남쪽에 광교원(廣敎院)이라는 대사구(大寺區)를 증설하여 창건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대도량(大道場)이 되었다.     1598년 임진왜란 때 왜병의 방화로 미륵전(彌勒殿)·대공전(大恭殿)·광교원(廣敎院) 등과 40여 개소에 달하는 산내 암자(庵子)가 소실되었다. 그러나 1601년(선조 34) 수문(守文)이 재건의 역사(役事)를 벌여 1635년(인조 13)에 낙성을 보았다. 고종(高宗) 때에 이르러 미륵전·대장전(大藏殿)·대적광전(大寂光殿) 등을 보수하고, 1934년에 다시 대적광전·금강문(金剛門)·미륵전 등을 중수하였다.     금산사와 인연이 있는 고승(高僧)은 혜덕왕사(慧德王師) 이외에도 도생승통(道生僧統)·원명(圓明)·진묵(震默)·소요(逍遙)·남악(南嶽) 등 대사가 거쳐 갔거나 죽거나 하였다.   주요 건물로는 미륵전(국보 62)·대적광전·대장전(보물 827)·명부전(冥府59殿)·나한전(羅漢殿)·일주문(一柱門)·금강문(金剛門)·보제루(普濟樓) 등과, 방등계단(方等戒壇)·5층석탑(보물 215)·6각다층석탑(보물 27)·석련대(石蓮臺:보물 23)·석종(石鐘:보물 26)·당간지주(幢竿支柱:보물 28)·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보물 24) 등이 있다.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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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09
  • 고려시대 수백명의 승려드링 머물던 대표사찰터, 만복사지
    만복사지는 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고려 문종 때 지어진 만복사의 터로 기린산을 북쪽에 두고 남쪽으로 넓은 평야를 둔 야산에 위치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권지39, 남원도호부 [불우조(佛宇條)]를 보면, “기린산 아래에 있는데, 동쪽에 오층전이 있고 서쪽에 이층전이 있으며, 전 내에는 동불이 있는데, 길이가 35척(약 10.6m)이다. 고려 문종 때에 창건되었다”고 기록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숙종 때에 간행된 [용성지(龍城誌)]의 내용으로 보아 만복사에는 5층과 2층으로 된 불상을 모시는 법당이 있었고, 그 안에는 높이 약 10m의 불상이 있었으며, 대웅전을 비롯한 많은 건물들과 수백 명의 승려들이 머무는 큰 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복사 내에는 대웅전, 약사전, 장육전, 영산전, 보응전, 종각, 천불전, 나한전, 명부전 등의 불전이 있었으나 정유재란(1597)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만복사는 불타버리고 말았다.     남원부사 정동설(鄭東卨)은 두 개의 방을 중창하여 승려들이 그곳에 머무르면서 사찰을 수호할 규칙을 만들게 하였다. 도선 국사는 남원부의 자리를 보고 사찰을 설립하여 불상을 조성하고 탑을 세울 것이며, 축천에 철우를 설치할 것이며, 골회봉에 철환을 설치할 것이며, 용담과 호산에 탑을 세울 것이며, 선원과 파근에 사찰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구려식의 절 배치를 따르고 있으며,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사찰의 하나로 연구 가치가 크다.     현재 절터에는 고려시대의 오층석탑(보물 제30호)과 석좌(石座, 보물 제31호),당간지주(幢竿支柱, 보물 제32호),석불입상(보물 제43호), 석인상(石人像) 등의 유물과 초석(礎石) 등 많은 석조물이 남아 있다. 또한 발굴조사 때 토기를 비롯한 청자, 백자 등의 기편(器片)과 금동불입상, 수막새 583점, 암막새 853점 등 다량의 기와가 출토되어 고려시대 미술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주소 : 전북 남원시 만복사길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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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22
  • 땅 끝에 위치한 아름다운 절, 전남 해남군 미황사
      [해남달마산미황사 - 출처 : 문화재청]   대한민국 육지 가장 남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절로, 한국관광공사에서 '2019-2020 한국관광100선'으로 선정한 전라남도 해남군 미황사.   [미황사 대웅전 - 출처 : 문화재청]     '신라 경덕왕 때, 금인(金人)이 타고 있는 배가 달마산에 닿았고, 그 안에는 화엄경, 법화경, 비로자나불, 탱화, 검은 돌 등이 실려있었다. 의조 화상과 사람들이 배 안의 물건에 대해 의논하는 중에 검은 돌에서 검은 소 한마리가 나와 커다란 소가 되었다. 의조 화상은 꿈에서 금인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소를 앞세워 가다가 한번 누웠다 일어난 자리에는 통교사를 짓고 마지막으로 쓰러진 자리에는 미황사를 창건했다' 1692년(숙종18년), 미황사 사적비에 적힌 미황사 창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미황사 지하루 - 출처 : 문화재청]     미황사의 미(美)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황(黃)은 금인의 빛깔을 의미한다고 한다.     [대웅전 목조삼존불 - 출처 : 문화재청]     미황사는 과거 한반도에서 꽤나 유명한 사찰이었던 모양이다. 고려 시대 기록에 따르면 미황사가 위치한 달마산으로 중국의 학자와 관리들이 내왕한 사실이 담겨 있다. 또, 조선 전기에는 불사와 법회들로 활발했다고 한다. 불행히도 조선 선조 때 일어난 정유재란(1597년)으로 모든 전각과 기록까지 소실되었지만, 이듬해인 1598년, 만선이 미황사를 중건하고 서산대사의 제자들이 미황사로 내려오면서 조선시대 후기까지 중심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대웅전 내부탱화 - 출처 : 문화재청]     현재 미황사는 대웅전, 달마전, 응진당, 명부전, 세심당 등이 중건·복원되었고, 당간지주, 부도군, 사적비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미황사 대웅전은 보물 제947호로 지정되어 있고 내부에는 삼존불과 후불탱화가 걸려 있다. 법당 뒤편에는 목궤에 넣어둔 매우 상한 괘불이 있는데, 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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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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