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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0.0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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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전의 기록은 모두 소실되어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등을 인용하여 사적기(事蹟記)가 만들어졌는데, 금산사의 창건은 600년(백제 법왕 1)에 왕의 자복(自福)사찰로 세워진 것이라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지금까지 전하는 바는 진표(眞表)가 762년(신라 경덕왕 21)부터 766년(신라 혜공왕 2)까지 4년에 걸쳐 중건(重建)하였으며, 1069년(문종 23) 혜덕왕사(慧德王師)가 대가람(大伽藍)으로 재청하고, 그 남쪽에 광교원(廣敎院)이라는 대사구(大寺區)를 증설하여 창건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대도량(大道場)이 되었다.

 

금산사.jpg

 

1598년 임진왜란 때 왜병의 방화로 미륵전(彌勒殿)·대공전(大恭殿)·광교원(廣敎院) 등과 40여 개소에 달하는 산내 암자(庵子)가 소실되었다. 그러나 1601년(선조 34) 수문(守文)이 재건의 역사(役事)를 벌여 1635년(인조 13)에 낙성을 보았다. 고종(高宗) 때에 이르러 미륵전·대장전(大藏殿)·대적광전(大寂光殿) 등을 보수하고, 1934년에 다시 대적광전·금강문(金剛門)·미륵전 등을 중수하였다.

 

금산사2.jpg

 

금산사와 인연이 있는 고승(高僧)은 혜덕왕사(慧德王師) 이외에도 도생승통(道生僧統)·원명(圓明)·진묵(震默)·소요(逍遙)·남악(南嶽) 등 대사가 거쳐 갔거나 죽거나 하였다.

 

주요 건물로는 미륵전(국보 62)·대적광전·대장전(보물 827)·명부전(冥府59殿)·나한전(羅漢殿)·일주문(一柱門)·금강문(金剛門)·보제루(普濟樓) 등과, 방등계단(方等戒壇)·5층석탑(보물 215)·6각다층석탑(보물 27)·석련대(石蓮臺:보물 23)·석종(石鐘:보물 26)·당간지주(幢竿支柱:보물 28)·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보물 24) 등이 있다.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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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사찰의 모습을 간직한 김제 금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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