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인 이상화의 고택은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6-1(계산동2가 84번지)에 위치한 이상화의 옛집으로 이상화 생가와는 다른 곳이다. 이상화 생가는 대구 중구 서성로13길7-20에 위치해있으며 현재는 라일락뜨락1956이라는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민족시인 이상화의 가문은 ‘이장가(李庄家)’라고도 알려져 있다. 이상화 시인은 1922년 문예지 <백조(白潮)>의 동인으로 활동하였고 다양한 시와 소설, 평론을 발표하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대표 작품이다. 이후 신경향파에 가담하게 되었다.
이상화의 고택은 이상화 시인이 1939년부터 1943년 작고하기 전까지 보낸 장소로 대구 중구 근대골목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으로는 서상돈 고택, 계산성당, 약령시가 있는 대구의 대표 중심지였다.
도심개발로 위기에 처해있었으나 1999년 대구고택보존시민운동으로 살아남았다. 대구시민뿐 아니라 전 국민 후원을 통해 1년간의 보수공사 후 2008년 8월 12일에 개방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의 대표적으로 알려진 작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일제강점기 한민족의 비참한 심정이 표현되었다. 대지면적 205m², 건축면적 64.5m²의 일자형의 한옥 목조주택 2동으로 되어있으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 관람료는 무료이다.
다음은 이상화 시인의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전문이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여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