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명재는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로 우리나라에 원군을 온 두사충이 귀화한 후에 그 후손들이 1912년에 세운 곳으로 그의 호인 '그리워할 모(慕)', '명나라 이름 명(明)'자를 써서 '명나라를 그리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두사충은 정유재란 때 두 아들과 함께 와서 공을 세웠고 난이 평정된 뒤에 귀화하였다. 현재 경상감영공원 쪽에서 살다가 계산동으로 이동했고 다시 대명동자리로 이동했다. 명나라를 생각하는 뜻에서 대명동이라 칭하였다. 매월 초하루가 되면 단을 쌓아 관복을 입고 고국을 향해 절을 올렸다고 한다. 자손들은 두사충의 유언에 따라 형제봉 기슭에 그의 묘소를 마련했다.
1912년 경산 객사가 헐리자 재목을 사와 두사충 묘소 앞에 만든 것인데 1966년 2월에 낡은 부분을 중수하였다. 모명재는 네모 반듯하게 대지에 남향으로 배치된 구조이다. 정면 4칸, 측변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 기와집이다.
대문에 적힌 만동문은 ‘백천유수필지동’에서 따온 것인데 뿌리를 잊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지어서 보낸 한시가 새겨진 대청기둥, 충무공의 7대손 삼남수군통제사 이인수가 비문을 지은 신도비와 명나라에서 들여온 2점 동물조각상이 있다.
이순신 장군은 두사충에게 한시를 지어 마음을 표했고, 두사충과 이순신의 우정은 그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두사충에게 쓴 시는 아래와 같다.
봉정두복야 : 두복야에게 드리는 시
북거동감고-북으로 가서는 고락을 같이 했고
동래공사생-동으로 와서는 생사를 함께 했네
성남타야월-성곽 남쪽 타향의 달밤 아래에서
금일일배정-오늘은 한 잔 술로 정을 나누세
모명재 뒤편에는 야산이 있는데 트래킹하기 좋은 완만한 코스다. 주변에는 모명재 한국전통문화 체험관이 있어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모명재의 위치는 대구 수성구 달구벌대로 525길 14-23이다. 관련문의 사항은 053-741-671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