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거문도를 거문(巨門), 즉 '큰 문이 되는 섬'으로 생각한다. 맞는 얘기다. 거문도는 그 지형학적 위치 때문에 고대부터 동아시아 뱃길의 중심이었다.
또 같은 이유로 근대 서구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거문(巨門)이라는 이름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섬이라 할 수도 있다.
또 같은 이유로 근대 서구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거문(巨門)이라는 이름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섬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문도라는 지명은 인물에서 비롯되었다는 얘기가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거문(巨文), 즉 ‘학문을 하는 큰 인물이 많은 섬'이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지명 유래가 지형이나 산천에서 비롯된 것에 비하면 이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라 하겠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이름을 얻었을까?
대부분의 지명 유래가 지형이나 산천에서 비롯된 것에 비하면 이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라 하겠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이름을 얻었을까?
그건 거문도에 일찍부터 뱃길을 통한 문물과 문화의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남도 끝자락 작은 섬에서 훌륭한 인물들을 길러내는 토양이 된것이다.
19세기 말 거문도엔 이미 당구장, 전깃불, 전화 등 육지에서도 구경하기 힘들었던 근대화의 물결이 상륙했다.
그리고 20세기 초업인 1905년엔 이미 근대학교인 낙영학교가 설립될 정도로 거문도의 문화흡수는 빠르고 전방위적이었다.
그리고 20세기 초업인 1905년엔 이미 근대학교인 낙영학교가 설립될 정도로 거문도의 문화흡수는 빠르고 전방위적이었다.
그것들이 큰 인물을 만들어 냈고, 그래서 거문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도 얻게 된 것이다. 거문도가 서구 열강들의 틈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동학운동과 치열한 항일운동을 끝까지 펼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학식있는 인물들이 섬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거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