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진은 조선시대 수군의 진영(鎭營)이며 목포영·목포대라고 불렀고 만호(萬戶)가 배치되었다고 해서 만호영·만호진·만호청이라 부르기도 했다.
지리상으로 볼 때 목포는 영산강 하구를 안고 있으며, 바다로 연결되는 지리적인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호남과 경상남부지역으로 통하는 세곡 운반로로 사용되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1439년 (세종21년) 처음 목포진의 설치가 재가 되었으며, 성의 모습이 갖추어 진것은 1502 (연산군 8년)으로 전해진다.
문헌비고에 의하면 당초 진성의 규모는 석축둘레 1,306척, 높이 7척 34촌이었으며, 우물과 못이 각 1개소씩 있었다고 한다.
문헌비고에 의하면 당초 진성의 규모는 석축둘레 1,306척, 높이 7척 34촌이었으며, 우물과 못이 각 1개소씩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목포진은 한반도 서남해의 방어지역으로써 그 역할을 다 했으나 1895년 (고종 32년) 7월 15일 고종 칙령 제141호에 의해 폐진 되었다.
폐진 직후인 개항당시만 해도 청사의 일부가 남아있어 무안감리서, 일본영사관 또는 역국사관 기지로 사용 되다 훼손되어 목포진 유적비만이 남아있던 곳을 2014년 현재의 모습으로 일부 복원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사라졌던 군사기지가 120여년만에 역사공원으로 복원돼 역사 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사라졌던 군사기지가 120여년만에 역사공원으로 복원돼 역사 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