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 집정이후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심할 때 당시 홍주감옥에서 순교한 교도들이 많았는데 그 친척들이 야간을 이용하여 이곳으로 운구 암장한 것이라 한다.
한 분묘에 여러분을 줄줄이 모셨기 때문에 줄묘 또는 줄무덤이라 한다.
그 순교자수와 성명과 순교경위를 알 수 없지만 가족단위로 묻혀 37기가 있으며 지금도 이 다락골에는 소실된 인가의 흔적이 10개소나 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천주교도의 집단마을로서 마을 전체가 참회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곳은 김대건신부와 더불어 최초의 유학신부이며, 김대건신부에 이어 두 번째 신부(사제)인 최양업신부(1821~1861)의 출생지로 전해진다.
숨어 다니며 신자마을을 찾아 수 십리 길을 걸어 다니는 등 눈부신 전교활동을 한 신부이다. 천주교 신자를 비롯하여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는 성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