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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1.1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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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은 다른 서원과 다르게 서당에서 서원으로 변신한 역사적인 서원이다. 병산서원의 시초는 풍악서당이다. 풍악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에 이 지역을 풍악현이라고 하는데서 비롯되었다. 풍악현의 중심은 지금의 풍산읍이었다.

 

04. 병산서원.jpg

 

병산서원은 가까운 하회마을과는 약 2Km 정도 떨어져 있다. 병산서원이 위치한 마을인 병산은 하회마을과 함께 병산탈춤이 유명한 마을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하회탈은 모두 11점인데 이중 2점이 병산탈이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병산서원의 역사는 고려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 행정구역으로 풍산현이었던 이곳에 인근의 사람들이 모여 공부하는 풍악서당이 있었다. 이후 풍악서당은 풍산현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조선초기가 지나면서 풍산현이 보다 큰 고을로 발전하였고, 풍악서당이 위치한 곳도 많은 집이 들어서면서 학문을 연마하기에 부족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04. 병산서원2.jpg

 

병산서당은 이후 병산서원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그러나 그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서애의 문집 별집 1권에 “병산서원봉별 김학봉환조이수 屛山書院奉別 金鶴峯還朝二首”라는 시가 있으며 이호민에게 보내 편지글에 ‘병산서원에서 퇴계 문집을 편집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어 서애 유성룡이 살아있을 때 이미 병산서원으로 불려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607년 서애 유성룡이 죽고 6년 후인 1613년에 정경세, 이준, 김윤안 등의 문인들과 유림들이 서원 안에 존덕사를 세우고 위패를 모시면서 본격적인 서원으로 기능을 가지게 된다.

 

04. 병산서원3.jpg

 

서원은 학문을 연마하는 기능과 선현을 추모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병산서원의 경우 입교당은 학문을 연마하는 중심이며, 존덕사는 선현을 추모하는 기능을 가진 건물이다. 현재 존덕사에는 서애 유성룡과 수암 류진 두 분을 모시고 봄과 가을에 각각 제사를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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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과 함께 탈춤이 유명한 곳, 병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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