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는 1561년 성리학적 가치를 실천하기 위하여 낙동강변에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를 건립하고 후학을 양성한다.
퇴계선생이 돌아가시고 4년 후인 1574년에 제자들과 유림들이 모여 도산서당 뒤편에 선생을 추모하고 학문을 이어받기 위하여 도산서원을 건립하였다. 도산서당과 도산서원의 위치는 퇴계선생께서 오래토록 고심하여 터를 잡은 곳이다. 처음 서당을 건립하고자하는 뜻을 가졌을 때 청량산과 도산서당 자리를 놓고 고심하였으나 자연성을 중시하고 소박하게 수행을 계속한 퇴계는 결국 이곳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흐르는 낙동강을 완상할 수 있는 도산서당은, 그러나 지금은 안동댐의 건립으로 입구가 바뀌고 풍취도 많이 사라졌다.
1575년에 선조가 한석봉의 친필인 “도산서당”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다. 이후 도산서원은 조선시대 학문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담당하며 퇴계의 학풍을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