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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9.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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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주목의 관아(官衙)가 남아있는데, 그 건물들을 최근(1983년)까지 중원군청청사 일부로 사용하였던 것을 그 일대를 정비하여 관아공원(一名 中央公園 중앙공원)이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다. 주변에는 거수목(巨樹木)이 있어 고색이 창연한 관아건물들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관아건물로는 동헌(東軒)으로 쓰던 청녕헌(淸寧軒)과 내아(內衙)로 쓰던 제금당(製錦堂) 그리고 산고수청각(山高水淸閣) 솟을삼문이 잘 남아있다.

 

11_관아공원2.jpg


청녕헌

청녕헌은 지방문화재 제66호로 지정·보호받고 있는데 조병로 목사(趙秉老牧使)가 고종 7년(1870) 8월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그 해 10월에 중건하였다. 건물구조는 전면 7칸, 측면 3칸 목조와가 팔작집인데, 기와에 명문이 있어서 민간의 사찰(蒼龍寺로 추정)을 헐어다가 지었음을 입증한다. 청녕헌이란 당호는 '天得以淸, 地得以寧'이란 글에서 인용한 것 같다. 장중한 맛이 한국의 건축미를 잘 나타내고 있다.


제금당

제금당은 지방문화재 제67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는데, 내아(內衙)로 쓰던 건물이다. 청녕헌과 함께 화재로 소실된 것을 조병로 목사가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물구조는 정면 6칸 반, 측면 2칸 팔각지붕인데 지방관아 건물로는 보기 드물게 단청(丹靑)이 되어 있다. 1983년 대수선을 하면서 발견된 단청문양을 그대로 복원하였다. 그리고 제금당이란 당호로 보아, 백성들에게 길쌈을 권장하는 뜻이 내포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산고수청각과 내삼문도 관아에 부속된 건물들로 충주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역사공부의 현장으로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공간이다.


충주축성 사적비

충주축성 사적비는 중앙공원을 찾아가도 흔히 지나치기 쉬운 유물이다. 지방문화재 제68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는 이 비는, 고종 6년(1869년)에 충주성을 축성하고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당시의 조병로 목사가 건립한 비인데 충주읍성의 규모와 문루(門樓)의 규모를 짐작 하게 하는 비이다. 성을 증축 할 때 참여한 인원이 모두 기록되어 있는데, 좌수 조광수외 65명의 명단이 기록 되어 있다.

 

충북 충주시 관아1길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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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주목의 관아 관아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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