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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에 위치한 아름다운 절, 전남 해남군 미황사
- [해남달마산미황사 - 출처 : 문화재청] 대한민국 육지 가장 남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절로, 한국관광공사에서 '2019-2020 한국관광100선'으로 선정한 전라남도 해남군 미황사. [미황사 대웅전 - 출처 : 문화재청] '신라 경덕왕 때, 금인(金人)이 타고 있는 배가 달마산에 닿았고, 그 안에는 화엄경, 법화경, 비로자나불, 탱화, 검은 돌 등이 실려있었다. 의조 화상과 사람들이 배 안의 물건에 대해 의논하는 중에 검은 돌에서 검은 소 한마리가 나와 커다란 소가 되었다. 의조 화상은 꿈에서 금인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소를 앞세워 가다가 한번 누웠다 일어난 자리에는 통교사를 짓고 마지막으로 쓰러진 자리에는 미황사를 창건했다' 1692년(숙종18년), 미황사 사적비에 적힌 미황사 창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미황사 지하루 - 출처 : 문화재청] 미황사의 미(美)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황(黃)은 금인의 빛깔을 의미한다고 한다. [대웅전 목조삼존불 - 출처 : 문화재청] 미황사는 과거 한반도에서 꽤나 유명한 사찰이었던 모양이다. 고려 시대 기록에 따르면 미황사가 위치한 달마산으로 중국의 학자와 관리들이 내왕한 사실이 담겨 있다. 또, 조선 전기에는 불사와 법회들로 활발했다고 한다. 불행히도 조선 선조 때 일어난 정유재란(1597년)으로 모든 전각과 기록까지 소실되었지만, 이듬해인 1598년, 만선이 미황사를 중건하고 서산대사의 제자들이 미황사로 내려오면서 조선시대 후기까지 중심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대웅전 내부탱화 - 출처 : 문화재청] 현재 미황사는 대웅전, 달마전, 응진당, 명부전, 세심당 등이 중건·복원되었고, 당간지주, 부도군, 사적비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미황사 대웅전은 보물 제947호로 지정되어 있고 내부에는 삼존불과 후불탱화가 걸려 있다. 법당 뒤편에는 목궤에 넣어둔 매우 상한 괘불이 있는데, 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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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에 위치한 아름다운 절, 전남 해남군 미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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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전사벌왕릉, 사벌국의 유일한 왕이 잠든 곳
- 이름이 다소 생소한 사벌국. 사벌국은 삼국시대 당시 상주 지방에 약 10여 년간 세워졌던 나라다. 사벌국의 시초이자 마지막 왕이었던 박언창의 왕릉, 오랜 역사를 품고 깊게 잠들어있는 상주 전사벌왕릉을 소개한다. 상주 전사벌왕릉은 상산 박씨의 시조인 박언창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능으로, 박언창은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왕자 중 5번째 아들이다. 경명왕은 박언창을 사벌대군으로 책봉하고 백제의 견훤으로부터 사벌주를 수호하도록 했으나, 견훤으로 인해 본국이 위기에 빠지자 박언창은 사벌동을 본영으로 삼아 사벌국이라 칭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이후 11년간 이어진 사벌국은 견훤의 침공을 받아 패망하게 되었고 사벌국의 왕이었던 박언창은 전사벌왕릉에 묻히게 되었다고 한다. 넓은 잔디밭 위의 전사벌왕릉은 주변의 다른 유적들과 함께 구경할 수 있다. 왕릉 주변에는 비석이 둥글게 모여있고, 석탑, 숭의각, 영사전 등의 유적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다. 왕릉 옆의 석탑은 보물 제117호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이 탑은 상주와 문경 지방에 분포된 탑의 특징인 8매의 장대석으로 구축한 지대석과, 하층기단 면석을 고려한 단층 기단부를 갖추었다. 석탑 뒤로는 재실 영사전이 있고, 주변에는 숭의각 안의 신도비와 사벌왕릉사적비가 있다. 이 유적들은 비교적 최근에 세워져 깔끔하게 잘 관리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벌국의 왕릉으로 기록된 전사벌왕릉은 이 외에도 「상주군읍지」,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등에 기록이 남아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전사벌왕릉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었다. 전사벌왕릉을 구경하며 먼 옛날, 이곳이 어떤 곳이었을지를 짐작해 보게 된다. 상산 박씨의 시조 박언창과 그가 세웠던 사벌국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상주 전사벌왕릉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〇 위치 :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화달리 산44-1 상주 전사벌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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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전사벌왕릉, 사벌국의 유일한 왕이 잠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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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동백꽃 낙화, 힐링 여행 가볼만한 곳
- 봄이다.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을 다녀왔다. 남도는 언제나 어머니 품처럼 따듯하고 푸근한 곳이다. 강진을 알게 된 것이 학창 시절 읽었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책이었다. 책 속의 내용 중 가장 걷고 싶었던 길이 바로 백련사에서 다산초당 가는 길이었다. 다산 정약용이 그 먼 유배지 강진에서 초의선사와 교류를 했던 그 길 말이다. 봄이 오면 강진 백련사를 꼭 가보시라, 특히 겨울에 피어 봄이면 낙화하는 붉은 꽃 동백꽃을 꼭 봐야 한다. 강진 백련사의 동백은 2월 초면 붉은 꽃이 피기 시작하여 3월이면 만개를 하여 3월 말 아름다운 낙화를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동백꽃의 낙화 모습을 감상하기 위해 3월 말 전라남도 강진을 찾았다. 강진에는 동백꽃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곳이 바로 백련사 동백나무숲이다. 지금 백련사는 온통 붉은색이다. 전라남도 강진의 만덕산에는 백련사라는 절이 있다. 이곳 대웅전에는 지금도 김생(711~791년)의 글씨라는 “백연사(白蓮寺)” 현판이 보관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왜병이 이 절에 불을 질러 놓고 살펴보니 현판이 김생의 글씨라 왜병들도 이 서성의 글씨가 중함을 알았던지 불에 타지 않도록 떼어놓아 오늘날까지 전해온다고 하는데 아름다운 낙화를 감상할 수 있는 백련사 동백나무숲이 바로 이곳이다. 백련사 동백나무숲은 국가지정 천연기념물이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잇는 길목에 약 5.2ha 면적에 7미터쯤 되는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그 중간중간에 보이는 아득하고 아늑한 바다 풍경은 숨 막힐 듯 아름답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 가는 길은 다산과 초의선사가 교류하던 사색의 숲이며 철학의 숲이고 구도의 숲이다. 백련사 사적비에는 아름다운 숲이라는 기록이 남아있고, 조선시대 문인 성임과 임억령의 시에서도 지은이가 백련사 동백나무숲의 뛰어난 경치를 직접 보지 못해 한스럽다는 내용이 담겨 있을 정도다. 동백나무숲을 즐길 때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사색하며 거닐어야 한다. 붉은 동백꽃들이 뚝뚝 떨어진 붉은 숲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면 더욱 조용히 가슴으로 꽃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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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동백꽃 낙화, 힐링 여행 가볼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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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천년고찰의 품격 백련사
- 강진 천년고찰의 품격 백련사 강진 백련사는 839년 무염 스님이 창건한 통일신라 사찰로 산 이름에 따라 만덕사가 되었다. 다른 사찰과 차이점은 오랜 역사가 포함된 만큼 역사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책자가 있는데, 이곳은 연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고 있지 않다. 조선 전반의 기록인 “동문선” 제81권과 다른 역사 책을 살펴보면, 신라 때 세워졌고 고려의 원묘 스님에 의해 중수되었으나, 왜적의 침략으로 폐허화된 후 조선시대 행호 스님이 다수 전각을 중수하면서 사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백련사는 오랜 역사만큼 산에 깃든 풍경들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었고 자연의 이치만큼 온갖 생명의 소중함 또한 가슴으로 다가왔다. 잔잔한 풍경이 건네주는 위로를 기쁘게 받으면서 코로나19로부터 힘들었던 시간을 잠시 잊어본다. 시곗바늘이 잠시 멈춘듯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백련사는 조선시대에 들어 억불정책으로 승려들은 천시되었고 백련사는 퇴보하였다. 남해안 일대는 왜구들에 의해 약탈이 수시로 진행되었던 장소였기에, 사찰은 명맥만 겨우 유지하였다. 세월이 흘러 효종 때 3차 중수를 거치면서 탑과 사적비가 세워지면서 사찰의 모습을 되찾아 가기 시작한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의 건물로 되었다. 각 추녀마다에 4개의 활주를 세워 건물을 받치고 있는 부분이 특징이다. 그리고 전면 2개의 주두에는 용두로 장식되어 있는데, 단청이 잘되어 있는 다포집 건물로 되어있다. 천년고찰 백련사를 둘러보다 보면, 세상 근심을 잊고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대웅전 내부에는 “목조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삼존불은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본존불은 좌우에 안치되어 있는 것은 이곳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백련사 사적비 건립 연대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있고 같은 시대에 건립했다고 해도 믿을 것 같다. 보존 상태 또한 양호하고 조각을 했던 기술도 뛰어나서 고려 시대 전기의 작품이 타임머신을 타고 고스란히 이곳으로 이동한 듯한 기분마저 든다. 백련사 보물 제1396호 강진 백련사 사적비는 백련사 대웅전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447cm 규모의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는 석비다. 이색적인 부분은 귀부, 비신, 이수로 구성되어 있지만 건립 연대는 조금씩 다르다. 참고로 귀부는 고려 시대 조성되었고 비신과 이수는 1681년에 조성되었다. 강진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길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백련사를 왕래할 때 이용하던 “사색의 길”로 유명합니다. 주변에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답다. 백련사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해 약 1km로 누구나 힐링 산책을 즐길 수 있다. - 위치 : 전남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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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천년고찰의 품격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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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을 이룬 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의 영정이 있는 통일전
- 통일전은 삼국통일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본받고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건립되었다. 삼국통일의 주역인 태종무열왕과 문무대왕 그리고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있는 곳이다. 무열왕은 삼국통일의 밑받침을 그리고 문무대왕과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통일을 이룬 영웅들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정강왕릉 옆에 위치해있는 통일전은 주변에 남산과 넓은 밭이 있어 한적하고 고요한 맛이 있다. 특히 조경도 잘 꾸며져 있어 산책하기 좋다. 통일전에 들어가면 넓은 길과 연못이 있는데 연못에는 큰 물고기가 흐느적 헤엄치는 걸 보니 평화로운 모습이다. 연못에 있는 정자는 고즈넉한 통일전의 분위기를 더한다. 통일전 안쪽으로 들어가면 삼국통일 순국 무명용사비가 있다. 이름 뜻 그대로 이름이 없는 용사들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것으로 그 당시의 전투현장을 상상으로 그려낸 그림이 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흥국문이 있고, 흥국문을 지나면 앞서 말한 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을 기리는 사적비가 있다. 맞은편에는 삼국통일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무열왕릉에 가면 거북이비가 있는데 이곳에도 거북이비로 세워져있다.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 서원문을 통과하면 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 영정을 모신 통일전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향을 피우고 기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있다. 영정을 모신 옆에는 걸을 수 있는 회랑이 있는데 경주의 사진들이 전시가 되어있다. 사진을 통해 경주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 전망대도 있어 이곳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통일전 입구 앞 들판까지 잘 보인다. 이는 남산 아래 위치하고 있어 그 경치를 더한다. 초,중학생들 위주로 견학을 많이 오고 호국영령을 기리고 통일이념의 교육장으로 활용되어 이용된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여름방학을 보내는 아이들과 방문하기에 좋고, 산책을 하며 역사의 흔적을 만나보아도 좋다. ○ 위치 : 경북 경주시 칠불암길 6 서원문 ○ 문의 : 054-779-8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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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을 이룬 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의 영정이 있는 통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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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양시] 자연 속 쉼터, 역사기행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안양
- 안양에는 수려한 자연 속에서 쉴 수 있는 쉼터와 긴 역사의 이야기가 담긴 문화재들이 있다. 어떤 곳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함께 알아가보자. 안양예술공원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의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주변의 전통사찰 및 문화재와 조화를 이루어 과거 수도권의 휴양지로 주목받았던 안양유원지가 훼손된 시설을 정비하여 안양예술공원으로 재탄생했다. 인공폭포, 야외무대, 전시관, 산책로 등을 설치했고, 울창한 숲 사이로 여러 등산로를 잘 구비하여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등산하기 알맞은 코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 위치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 일대 삼막사 1300여년 전 신라 문무왕 때 창건한 삼막사는 예술과 미학을 품고 있는 절이다. 삼막사에서는 마애삼존불, 삼층석탑, 사적비 등 다양한 그 시대의 예술품을 만나볼 수 있다. 삼막사 주변은 등산은 물론 자전거로 돌기에도 좋은 코스가 많으며, 삼막사 계곡은 여름철 물놀이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위치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241·54 만안교 조선시대 정조가 아버지 세도세자가 묻힌 융릉을 참배하러 가기 위해 1795년(정조 19)에 축조한 만안교는 ‘만년 동안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리를 건널 수 있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에는 왕이 행차하는 길에 임시로 나무 다리를 만들었다가 없애곤 했는데, 정조는 이러한 번거로움을 없애고 백성들이 평상시에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영구적인 돌다리를 놓게 했다. 고풍스러운 돌다리를 건너며 백성을 생각한 임금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건 어떨까? ● 위치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679 안양사 안양사에는 태조 왕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왕건이 아직 고려를 세우기 전 전금주(지금의 시흥)와 과주(지금의 과천)을 점령하러 가던 중 삼성산을 지나게 되었는데 산꼭대기에 오색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 홀연히 나타난 능정 스님이 ‘오색구름이 사방에서 지켜주니 필시 새로운 나라가 들어선다’며 ‘이곳에 절을 짓고 안양사라 칭하면 후대까지 태평성대를 이룬다’고 말했다. 10세기에 창건해 16세기까지 존재했던 안양사는 6.25 전쟁 이후 삼성산 안쪽에 새로운 터를 잡아 옛 안양사를 기리는 형태로 재창건했다. ● 위치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131번길 103 (사진출처 : 안양시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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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양시] 자연 속 쉼터, 역사기행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안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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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전사벌왕릉, 사벌국의 유일한 왕이 잠든 곳
- 이름이 다소 생소한 사벌국. 사벌국은 삼국시대 당시 상주 지방에 약 10여 년간 세워졌던 나라다. 사벌국의 시초이자 마지막 왕이었던 박언창의 왕릉, 오랜 역사를 품고 깊게 잠들어있는 상주 전사벌왕릉을 소개한다. 상주 전사벌왕릉은 상산 박씨의 시조인 박언창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능으로, 박언창은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왕자 중 5번째 아들이다. 경명왕은 박언창을 사벌대군으로 책봉하고 백제의 견훤으로부터 사벌주를 수호하도록 했으나, 견훤으로 인해 본국이 위기에 빠지자 박언창은 사벌동을 본영으로 삼아 사벌국이라 칭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이후 11년간 이어진 사벌국은 견훤의 침공을 받아 패망하게 되었고 사벌국의 왕이었던 박언창은 전사벌왕릉에 묻히게 되었다고 한다. 넓은 잔디밭 위의 전사벌왕릉은 주변의 다른 유적들과 함께 구경할 수 있다. 왕릉 주변에는 비석이 둥글게 모여있고, 석탑, 숭의각, 영사전 등의 유적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다. 왕릉 옆의 석탑은 보물 제117호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이 탑은 상주와 문경 지방에 분포된 탑의 특징인 8매의 장대석으로 구축한 지대석과, 하층기단 면석을 고려한 단층 기단부를 갖추었다. 석탑 뒤로는 재실 영사전이 있고, 주변에는 숭의각 안의 신도비와 사벌왕릉사적비가 있다. 이 유적들은 비교적 최근에 세워져 깔끔하게 잘 관리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벌국의 왕릉으로 기록된 전사벌왕릉은 이 외에도 「상주군읍지」,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등에 기록이 남아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전사벌왕릉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었다. 전사벌왕릉을 구경하며 먼 옛날, 이곳이 어떤 곳이었을지를 짐작해 보게 된다. 상산 박씨의 시조 박언창과 그가 세웠던 사벌국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상주 전사벌왕릉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〇 위치 :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화달리 산44-1 상주 전사벌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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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동백꽃 낙화, 힐링 여행 가볼만한 곳
- 봄이다.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을 다녀왔다. 남도는 언제나 어머니 품처럼 따듯하고 푸근한 곳이다. 강진을 알게 된 것이 학창 시절 읽었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책이었다. 책 속의 내용 중 가장 걷고 싶었던 길이 바로 백련사에서 다산초당 가는 길이었다. 다산 정약용이 그 먼 유배지 강진에서 초의선사와 교류를 했던 그 길 말이다. 봄이 오면 강진 백련사를 꼭 가보시라, 특히 겨울에 피어 봄이면 낙화하는 붉은 꽃 동백꽃을 꼭 봐야 한다. 강진 백련사의 동백은 2월 초면 붉은 꽃이 피기 시작하여 3월이면 만개를 하여 3월 말 아름다운 낙화를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동백꽃의 낙화 모습을 감상하기 위해 3월 말 전라남도 강진을 찾았다. 강진에는 동백꽃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곳이 바로 백련사 동백나무숲이다. 지금 백련사는 온통 붉은색이다. 전라남도 강진의 만덕산에는 백련사라는 절이 있다. 이곳 대웅전에는 지금도 김생(711~791년)의 글씨라는 “백연사(白蓮寺)” 현판이 보관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왜병이 이 절에 불을 질러 놓고 살펴보니 현판이 김생의 글씨라 왜병들도 이 서성의 글씨가 중함을 알았던지 불에 타지 않도록 떼어놓아 오늘날까지 전해온다고 하는데 아름다운 낙화를 감상할 수 있는 백련사 동백나무숲이 바로 이곳이다. 백련사 동백나무숲은 국가지정 천연기념물이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잇는 길목에 약 5.2ha 면적에 7미터쯤 되는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그 중간중간에 보이는 아득하고 아늑한 바다 풍경은 숨 막힐 듯 아름답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 가는 길은 다산과 초의선사가 교류하던 사색의 숲이며 철학의 숲이고 구도의 숲이다. 백련사 사적비에는 아름다운 숲이라는 기록이 남아있고, 조선시대 문인 성임과 임억령의 시에서도 지은이가 백련사 동백나무숲의 뛰어난 경치를 직접 보지 못해 한스럽다는 내용이 담겨 있을 정도다. 동백나무숲을 즐길 때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사색하며 거닐어야 한다. 붉은 동백꽃들이 뚝뚝 떨어진 붉은 숲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면 더욱 조용히 가슴으로 꽃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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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동백꽃 낙화, 힐링 여행 가볼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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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천년고찰의 품격 백련사
- 강진 천년고찰의 품격 백련사 강진 백련사는 839년 무염 스님이 창건한 통일신라 사찰로 산 이름에 따라 만덕사가 되었다. 다른 사찰과 차이점은 오랜 역사가 포함된 만큼 역사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책자가 있는데, 이곳은 연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고 있지 않다. 조선 전반의 기록인 “동문선” 제81권과 다른 역사 책을 살펴보면, 신라 때 세워졌고 고려의 원묘 스님에 의해 중수되었으나, 왜적의 침략으로 폐허화된 후 조선시대 행호 스님이 다수 전각을 중수하면서 사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백련사는 오랜 역사만큼 산에 깃든 풍경들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었고 자연의 이치만큼 온갖 생명의 소중함 또한 가슴으로 다가왔다. 잔잔한 풍경이 건네주는 위로를 기쁘게 받으면서 코로나19로부터 힘들었던 시간을 잠시 잊어본다. 시곗바늘이 잠시 멈춘듯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백련사는 조선시대에 들어 억불정책으로 승려들은 천시되었고 백련사는 퇴보하였다. 남해안 일대는 왜구들에 의해 약탈이 수시로 진행되었던 장소였기에, 사찰은 명맥만 겨우 유지하였다. 세월이 흘러 효종 때 3차 중수를 거치면서 탑과 사적비가 세워지면서 사찰의 모습을 되찾아 가기 시작한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의 건물로 되었다. 각 추녀마다에 4개의 활주를 세워 건물을 받치고 있는 부분이 특징이다. 그리고 전면 2개의 주두에는 용두로 장식되어 있는데, 단청이 잘되어 있는 다포집 건물로 되어있다. 천년고찰 백련사를 둘러보다 보면, 세상 근심을 잊고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대웅전 내부에는 “목조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삼존불은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본존불은 좌우에 안치되어 있는 것은 이곳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백련사 사적비 건립 연대가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있고 같은 시대에 건립했다고 해도 믿을 것 같다. 보존 상태 또한 양호하고 조각을 했던 기술도 뛰어나서 고려 시대 전기의 작품이 타임머신을 타고 고스란히 이곳으로 이동한 듯한 기분마저 든다. 백련사 보물 제1396호 강진 백련사 사적비는 백련사 대웅전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447cm 규모의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는 석비다. 이색적인 부분은 귀부, 비신, 이수로 구성되어 있지만 건립 연대는 조금씩 다르다. 참고로 귀부는 고려 시대 조성되었고 비신과 이수는 1681년에 조성되었다. 강진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길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백련사를 왕래할 때 이용하던 “사색의 길”로 유명합니다. 주변에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어우러져 경관이 아름답다. 백련사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해 약 1km로 누구나 힐링 산책을 즐길 수 있다. - 위치 : 전남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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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천년고찰의 품격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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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분산
- 분산 정상에 둘레 약 923m, 폭 8m 정도로 쌓은 성벽. 사적 제66호로 낙동강 하류의 드넓은 평야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산꼭대기에 있는 평탄한 지형을 둘러서 그 주위에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수직에 가까운 석벽의 높이는 약 3~4m에 이른다. 이곳에 세워진 '정국군박공위축성사적비'를 보면, 조선 초기에 박위가 고산성(古山城)에 의거 수축했으며,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1871년 (고종 8년)에 다시 현재의 성벽으로 고쳐지었다고 적혀 있다. 분산성으로 가는 장 쉬운 방법은 먼저 해은사(海恩寺)를 찾는 것. 해은사 옆 길로 조금만 내려가면 김해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지면서 견고하게 쌓은 성벽이 길게 이어진다. 해은사는 허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무사히 바다를 건너 가락국으로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절. 풍랑을 막아준 바다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이 담겨 있다. 그리움과 감사한 마음 담은 ‘왕후의 노을’ 해질 무렵 분산성에 올랐을 때, 하늘이 붉은 빛으로 변한다면 쉽게 자리를 뜨지 말 것. 분산성에서 보는 노을은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 바로 허왕후의 노을이기 때문이다. 허황옥은 꿈속의 계시를 받고 자신의 낭군이 될 수로왕을 만나기 위해 머나먼 바닷길에 올랐는데, 거대한 바다와 거친 파도 속에서 그녀에게 위안을 준 것은 바로 노을이었다. 노을은 오늘의 안녕과 내일의 만남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으로 붉게 물들었고, 허황옥은 마침내 운명의 짝을 만나 수로왕비가 되었다. 허왕후는 그 노을을 잊을 수가 없어 분산성에 올랐고, 노을을 보며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고 인도 아유타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분산성 노을은 김해낙동강레일파크의 ‘왕의 노을’을 마주하고 있어 더욱 의미가 깊다. 주소 : 김해 어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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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을 이룬 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의 영정이 있는 통일전
- 통일전은 삼국통일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본받고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건립되었다. 삼국통일의 주역인 태종무열왕과 문무대왕 그리고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있는 곳이다. 무열왕은 삼국통일의 밑받침을 그리고 문무대왕과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통일을 이룬 영웅들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정강왕릉 옆에 위치해있는 통일전은 주변에 남산과 넓은 밭이 있어 한적하고 고요한 맛이 있다. 특히 조경도 잘 꾸며져 있어 산책하기 좋다. 통일전에 들어가면 넓은 길과 연못이 있는데 연못에는 큰 물고기가 흐느적 헤엄치는 걸 보니 평화로운 모습이다. 연못에 있는 정자는 고즈넉한 통일전의 분위기를 더한다. 통일전 안쪽으로 들어가면 삼국통일 순국 무명용사비가 있다. 이름 뜻 그대로 이름이 없는 용사들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것으로 그 당시의 전투현장을 상상으로 그려낸 그림이 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흥국문이 있고, 흥국문을 지나면 앞서 말한 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을 기리는 사적비가 있다. 맞은편에는 삼국통일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무열왕릉에 가면 거북이비가 있는데 이곳에도 거북이비로 세워져있다.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 서원문을 통과하면 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 영정을 모신 통일전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향을 피우고 기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있다. 영정을 모신 옆에는 걸을 수 있는 회랑이 있는데 경주의 사진들이 전시가 되어있다. 사진을 통해 경주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 전망대도 있어 이곳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통일전 입구 앞 들판까지 잘 보인다. 이는 남산 아래 위치하고 있어 그 경치를 더한다. 초,중학생들 위주로 견학을 많이 오고 호국영령을 기리고 통일이념의 교육장으로 활용되어 이용된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여름방학을 보내는 아이들과 방문하기에 좋고, 산책을 하며 역사의 흔적을 만나보아도 좋다. ○ 위치 : 경북 경주시 칠불암길 6 서원문 ○ 문의 : 054-779-8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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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주목의 관아 관아공원
- 조선시대 충주목의 관아(官衙)가 남아있는데, 그 건물들을 최근(1983년)까지 중원군청청사 일부로 사용하였던 것을 그 일대를 정비하여 관아공원(一名 中央公園 중앙공원)이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다. 주변에는 거수목(巨樹木)이 있어 고색이 창연한 관아건물들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관아건물로는 동헌(東軒)으로 쓰던 청녕헌(淸寧軒)과 내아(內衙)로 쓰던 제금당(製錦堂) 그리고 산고수청각(山高水淸閣) 솟을삼문이 잘 남아있다. 청녕헌 청녕헌은 지방문화재 제66호로 지정·보호받고 있는데 조병로 목사(趙秉老牧使)가 고종 7년(1870) 8월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그 해 10월에 중건하였다. 건물구조는 전면 7칸, 측면 3칸 목조와가 팔작집인데, 기와에 명문이 있어서 민간의 사찰(蒼龍寺로 추정)을 헐어다가 지었음을 입증한다. 청녕헌이란 당호는 '天得以淸, 地得以寧'이란 글에서 인용한 것 같다. 장중한 맛이 한국의 건축미를 잘 나타내고 있다. 제금당 제금당은 지방문화재 제67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는데, 내아(內衙)로 쓰던 건물이다. 청녕헌과 함께 화재로 소실된 것을 조병로 목사가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물구조는 정면 6칸 반, 측면 2칸 팔각지붕인데 지방관아 건물로는 보기 드물게 단청(丹靑)이 되어 있다. 1983년 대수선을 하면서 발견된 단청문양을 그대로 복원하였다. 그리고 제금당이란 당호로 보아, 백성들에게 길쌈을 권장하는 뜻이 내포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산고수청각과 내삼문도 관아에 부속된 건물들로 충주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역사공부의 현장으로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공간이다. 충주축성 사적비 충주축성 사적비는 중앙공원을 찾아가도 흔히 지나치기 쉬운 유물이다. 지방문화재 제68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는 이 비는, 고종 6년(1869년)에 충주성을 축성하고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당시의 조병로 목사가 건립한 비인데 충주읍성의 규모와 문루(門樓)의 규모를 짐작 하게 하는 비이다. 성을 증축 할 때 참여한 인원이 모두 기록되어 있는데, 좌수 조광수외 65명의 명단이 기록 되어 있다. 충북 충주시 관아1길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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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주목의 관아 관아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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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에 위치한 아름다운 절, 전남 해남군 미황사
- [해남달마산미황사 - 출처 : 문화재청] 대한민국 육지 가장 남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절로, 한국관광공사에서 '2019-2020 한국관광100선'으로 선정한 전라남도 해남군 미황사. [미황사 대웅전 - 출처 : 문화재청] '신라 경덕왕 때, 금인(金人)이 타고 있는 배가 달마산에 닿았고, 그 안에는 화엄경, 법화경, 비로자나불, 탱화, 검은 돌 등이 실려있었다. 의조 화상과 사람들이 배 안의 물건에 대해 의논하는 중에 검은 돌에서 검은 소 한마리가 나와 커다란 소가 되었다. 의조 화상은 꿈에서 금인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소를 앞세워 가다가 한번 누웠다 일어난 자리에는 통교사를 짓고 마지막으로 쓰러진 자리에는 미황사를 창건했다' 1692년(숙종18년), 미황사 사적비에 적힌 미황사 창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미황사 지하루 - 출처 : 문화재청] 미황사의 미(美)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황(黃)은 금인의 빛깔을 의미한다고 한다. [대웅전 목조삼존불 - 출처 : 문화재청] 미황사는 과거 한반도에서 꽤나 유명한 사찰이었던 모양이다. 고려 시대 기록에 따르면 미황사가 위치한 달마산으로 중국의 학자와 관리들이 내왕한 사실이 담겨 있다. 또, 조선 전기에는 불사와 법회들로 활발했다고 한다. 불행히도 조선 선조 때 일어난 정유재란(1597년)으로 모든 전각과 기록까지 소실되었지만, 이듬해인 1598년, 만선이 미황사를 중건하고 서산대사의 제자들이 미황사로 내려오면서 조선시대 후기까지 중심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대웅전 내부탱화 - 출처 : 문화재청] 현재 미황사는 대웅전, 달마전, 응진당, 명부전, 세심당 등이 중건·복원되었고, 당간지주, 부도군, 사적비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미황사 대웅전은 보물 제947호로 지정되어 있고 내부에는 삼존불과 후불탱화가 걸려 있다. 법당 뒤편에는 목궤에 넣어둔 매우 상한 괘불이 있는데, 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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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에 위치한 아름다운 절, 전남 해남군 미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