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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거닐며 ‘너와 나의 단풍길’ 즐겨보세요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나명하)는 단풍이 아름다운 계절 가을을 맞아 궁궐과 조선왕릉의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도록 4대궁과 종묘, 조선왕릉의 단풍이 물드는 시기를 안내하고 이에 맞춰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잦은 비에 연이은 태풍의 피해에도 궁궐과 왕릉을 물들이는 단풍은 어김없이 시기를 맞춰 찾아오고 있다. 가을 정취를 한껏 더 해줄 조선왕릉의 단풍은 오는 23일을 전후로 물들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며, 10월 말부터 11월 초 사이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왕릉에서 단풍을 만끽할 수 있는 숲길 추천 장소로는 ▲ 서울 정릉(태조비 신덕황후) 숲길, ▲ 서울 태릉(중종비 문정왕후) ‧ 강릉(명종과 인순왕후) 숲길, ▲ 남양주 광릉(세조와 정희왕후) 숲길, ▲ 남양주 홍릉(고종과 명성황후) ‧ 유릉(순종과 순명황후‧순정황후) 단풍나무 숲길, ▲ 화성 융릉(추존왕 장조와 헌경황후)‧건릉(정조와 효의황후) 상수리나무 숲길, ▲ 고양 서오릉 서어나무 숲길 등이 있다. 단풍 구경과 함께 조선왕릉에서 펼쳐지는 가을 문화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즐거운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구리 동구릉은 오는 19일부터 11월 17일까지 한 달간「건원릉 억새 절정기 능침 특별개방」을 하며, 남양주 사릉은 10월 19~20일 조선왕릉 그리기와 함께 들국화를 따는 체험행사도 진행한다. 그 밖의 조선왕릉에서도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되어 있다. 아울러 4대궁과 종묘의 단풍 시기는 10월 20일 전후로 시작되어 11월 초순까지 즐길 수 있으며, 10월 말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 경복궁‧종묘 화요일 휴무, 그 외 고궁과 왕릉은 월요일 휴무 4대궁‧종묘·조선왕릉의 가을 문화행사 등 더 자세한 안내는 4대궁과 종묘, 조선왕릉 누리집을 참조하거나 전화로 문의하면 된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도심 속에서도 수려한 경관이 잘 보전되어 있는 고궁과 왕릉에서 가족과 연인들이 함께 거닐며 가을의 단풍을 만끽하고 바쁜 일상 속 쉼표를 찍는 시간을 즐기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우리의 문화유산들이 국민 곁에 더 가까운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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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의 보물: 신비의 문화유산, 영월장릉
- 한국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안타까운 이야기가 담긴 공간. 단종의 애달픈 운명이 고즈넉한 자연 속에 스며든 공간,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특별한 장소. 문화유산 관광지인 영월 장릉을 소개한다. 강원도의 영월의 자연 속에 위치한 이곳은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무덤으로, 한국의 역사와 전설이 어우러진 장소이다. 영월 장릉은 1970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며,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 매년 4월 마지막 주말에는 단종문화제가 열리며, 다양한 행사가 장엄하게 재현된다. 단종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심지어 그의 시신은 동강에 버려졌다. 다행히도 호장 엄흥도가 이를 수습해 장릉에 안치했고, 이 장릉이 현재의 영월장릉으로 불리고 있다. 장릉은 병풍석이나 난간석이 없고 석물도 단순하지만, 단종을 기리기 위한 정려비와 역사적인 기념비들이 위치해있다. 영월장릉이 신비한 문화유산으로 여겨지는 데에는 이러한 역사적인 이야기들만이 아니라, 장릉 주변의 소나무들이 능을 향해 굽어져 있어 독특한 경관을 자아내는 모습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이러한 모습들이 이 장소의 신비함을 더해주고 있다. 영월장릉을 방문하여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단종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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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의 보물: 신비의 문화유산, 영월장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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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 떠나는 힐링 타임! 보은 속리산 숲체험휴양마을
- "숲은 인간의 심령을 치유하고 안정감을 주는 곳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숲속에서 마주하는 자연의 소리, 풍경, 그리고 신선한 공기는 우리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며, 고된 일상 속 쌓여갔던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이번 기사에서는 청정 자연 속 신선한 자유를 만끽하고 몸과 마음을 힐링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보은 속리산 숲체험휴양마을을 소개한다.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 자락에 위치한 속리산 숲체험휴양마을은 조선시대 세조 등 많은 왕이 휴양한 역사를 가지고 있을 만큼 휴양지로써 오랫동안 사랑받는 곳이다. 이곳에는 기와집, 초가집, 통나무집으로 된 다양한 숙소가 있어 원하는 숙소를 골라 이용해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의 규모가 크다 보니 호랑이 전기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전기버스를 타면 보다 편하게 숙소에 오갈 수 있고, 투어처럼 숲체험휴양마을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도 만나볼 수 있다. 숲체험휴양마을에서 직접 담근 간장과 된장 또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데 보은군에서 생산한 재료를 이용해 직접 담근 간장과 된장을 숲체험휴양마을 식당 이용객들에게 제공하면서 이용객들의 구입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이용객들이 청정 자연뿐만 아니라 음식 속에서도 힐링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숲체험휴양마을의 세심한 노력이 느껴진다. 조용한 숲속에 자리 잡아 휴양하기 좋은 힐링 명소로 떠오르는 보은 속리산 숲체험휴양마을. 복잡하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낮과 밤, 온종일 숲에 머물며 휴식과 힐링의 시간을 만끽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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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 떠나는 힐링 타임! 보은 속리산 숲체험휴양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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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장릉, 충절의 가치를 만날 수 있는 단종의 무덤
- 영월에 위치한 장릉은 조선 6대 왕이었던 단종의 무덤이다.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은 그의 무덤은 조선의 다른 왕릉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단종과, 그를 끝까지 지켰던 신하들의 충절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월 장릉을 만나보자.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인해 폐위되었는데, 당시 단종의 복위를 꾀하던 충신들 사육신과 생육신은 목숨을 걸고 단종의 복위를 꾀하였으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단종의 사후, 후환이 두려워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는데 영월호장 엄흥도가 장사를 지내 가매장될 수 있었다. 단종은 세상을 떠날 당시 노산군의 신분으로 강등된 상태였으나 후에 단종대왕으로 복위되면서 가매장 상태였던 묘지가 다시 조성되었다. 장릉의 진입공간에는 일반적인 조선 왕릉과는 달리 단종의 충신들을 위한 건조물이 있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묘를 만든 엄흥도의 정려각, 노산군묘를 찾아 제를 올린 박충원의 낙촌비각,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신하들의 위폐를 모신 장판옥과 배식단은 충절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장릉은 작은 후릉의 양식을 따라 석물이 왜소하고 간단한 편이며, 병풍석과 난간석이 세워져 있지 않다. 또한 단종의 폐위와 관련된 정려비, 기적비, 정자 등이 있어 장릉을 둘러보면 어린 나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비운의 왕, 단종을 만나는 듯하다. 영월 장릉은 조선왕릉 능원 공간의 조형 형식 변화와 산릉제례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장릉 내에는 단종의 생애와 사육신의 충절을 재조명하기 위해 건립된 역사 박물관 단종역사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세종실록, 문종실록, 단종실록, 세조실록 등 단종과 관련된 국가 기록물들과 단종의 세자 책봉, 왕위 책봉, 사망 과정에 대한 기록물들을 볼 수 있으니 단종의 생애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같이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단종의 마지막을 만나볼 수 있는 영월 장릉. 이곳에서 충절의 절개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〇 위치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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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장릉, 충절의 가치를 만날 수 있는 단종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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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양주 수종사, 두물머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사찰
- 운길산의 정상 쪽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수종사는 멋진 풍경을 보러 온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다. 수종사 종무소의 위쪽에 있는 산신각에 오르면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앞에는 수종사가, 저 멀리에는 너른 강이 펼쳐진 풍경은 사방이 푸릇푸릇해 마음의 짐이 깔끔히 털어지는 듯하다. 수종사는 대한민국 명승 제109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수종사를 건립하며 함께 만든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이 보물 제1808호, 출토유물들이 보물 제1789로 지정되어 있는 등 수종사에서는 중요한 문화재들을 다수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보물 2013호인 수종사 사리탑은 조선 태종 이방원의 딸 정혜옹주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승탑으로, 조선 전기의 사리탑 연구에 큰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수종사는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먼저, 고려 태조 왕건이 산 위의 이상한 구름을 보고 산에 가보았다가 우물 속에서 동종을 발견해 그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 세조가 운길산에서 종소리를 듣고 자다 깨어 주변을 찾아보니 18 나한상이 있는 바위굴에서 물소리가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것을 발견하고, 이곳에 절을 만든 뒤 이름을 수종사라고 붙였다는 설도 있다. 수종사는 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다도를 중흥시켜 다선으로 불린 초의선사가 수종사에서 다산 정약용과 차를 마시곤 해, 현재까지도 수종사는 삼정헌이라는 다실에서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삼정헌은 소정의 시주를 하면 관광객들도 차를 마실 수 있다고 하니 방문해서 차를 한 잔 마셔보자. 수종사는 입장료와 주차장 요금이 무료이며, 사찰이지만 관람시간이 7시에서 18시로 정해져 있으니 참고하여 방문해야 한다. 〇 위치 :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1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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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양주 수종사, 두물머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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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단종역사관, 비운의 왕 단종과 함께한 사육신과 생육신을 기리며
- 어린 나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비운의 왕, 단종.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알리고 바로잡는 단종역사관을 단종의 묘인 장릉에서 만날 수 있었다. 단종은 조선의 6대 왕으로, 숙부인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인해 폐위되어 짧은 생을 끝내야 했던 비운의 왕이다. 단종의 아버지이자 세종의 맏아들인 문종은 병으로 인해 재위 2년 만에 사망하였다. 문종의 사망으로 인해 어린 나이로 단종이 왕이 되자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문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은 반역을 꾀했다. 그는 계유정난을 통해 단종을 영월에 유배되어 사약을 받게 하고 세조가 되었다. 사육신과 생육신은 세조에 의해 쫓겨난 단종의 복위를 꾀하던 충신들이다. 사육신은 목숨을 바쳐 절개를 지킨 신하들이고, 생육신은 살아서 싸운 신하들이다. 사육신은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세조를 ‘전하’라고 부르지 않는 등 단종에 대한 충심을 지켰고, 생육신은 벼슬을 내려놓고 단종을 추모하며 절개를 지켰다. 단종역사관은 단종의 생애와 사육신의 충절을 재조명하기 위해 건립된 역사 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세종실록, 문종실록, 단종실록, 세조실록 등 단종과 관련된 국가 기록물들과 단종의 세자책봉, 왕위 책봉, 사망 과정에 대한 기록물들을 볼 수 있다. 단종역사관의 모든 자료는 조선왕조실록을 근거로 제작되었으며, 그래픽패널, 영상물, 디오라마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단종의 생애를 알기 쉽게 전달한다. 단종의 죽음에 있어 중요한 키워드인 사육신과 생육신에 대한 전시물도 빼놓을 수 없다. 족쇄, 신장, 태, 장, 착고 등 조선 시대의 형구와, 태형, 장형, 유형, 사형 등 형벌을 설명하는 전시물들이 살벌하게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생육신과 사육신의 충절을 기린 위패는 형벌과 관련된 전시물을 보고난 후 더 마음에 와닿게 느껴진다. 왜곡된 단종의 역사를 바로잡는 중요한 역사관인 영월 단종역사관. 이곳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만날 수 있었고 이를 널리 알리고 바로 잡고자하는 마음을 만날 수 있었다. 〇 위치 : 강원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〇 단종역사관 홈페이지 : http://www.ywmuseum.com/museum/index.do?museum_n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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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단종역사관, 비운의 왕 단종과 함께한 사육신과 생육신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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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에 88마리 호랑이 보러 오세요!
-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임인년 호랑이해를 맞이하여 상설 전시실 1존(3층) 작은 전시실에서 ‘조선시대 사람들이 사랑한 동물들 1 - 2022, 범 내려온다!’展을 오는 4월 24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처음 공개하는 유치봉의 「산속에 노니는 78마리 호랑이 그림」을 비롯하여 총 88마리의 호랑이가 등장하는 소장유물 14점을 선보인다. 사인검(四寅劍)은 호랑이 해(寅年), 호랑이 달(寅月), 호랑이 날(寅日), 호랑이 시간(寅時)에 오래된 쇠로 만든 칼이다. 사인검은 순수한 양(陽)의 기운으로 사악한 기운으로 귀신을 베고, 재앙을 물리친다는 의미로 조선왕실에서 주로 제작되었다. 검에는 별자리와 주문이 금으로 새겨져 있다. 호랑이를 탄 인물상은 상여에 장식하던 것으로 장군 등 인물상이 죽은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거나, 호위하는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작되었다. 시대에 따라 장군 대신 군인 등의 모습을 한 예도 있다. 이외에도 호랑이와 까치 그림, 호랑이와 대나무 그림 등과 함께 호랑이와 까치가 그려진 백자, 호랑이 발톱 노리개도 함께 전시된다. 인왕산 범바위, 북아현동 호반재, 갈현동 벌고개 등 서울지역 내 호랑이와 관련된 장소 10여 곳을 영상 패널로 소개한다. 은평구 갈현동에 위치한 벌고개는 궁말에서 서오릉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세조 11년(1465) 호랑이의 피해가 있자 병조판서 김질(金礩)에게 명하여 범을 잡게 하였으나, 실패하자 세조가 친히 장수를 지휘하여 범을 잡았다고 전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호랑이 부적체험 코너를 함께 운영한다. 체험에 사용되는 부적은 박물관 소장유물을 본떠 만든 것으로 호랑이 등 위에 머리가 셋 달린 매가 올라탄 것으로 조선시대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것이다. 전시는 서울역사박물관 상설전시실 1존에 위치한 작은 전시실에서 무료로 관람 가능하며,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전시에 대한 정보는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museum.seoul.go.kr)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문의: 02-7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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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에 88마리 호랑이 보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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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박팽년의 후손들이 있는 곳, 육신사 마을
- 조선시대는 왕권 다툼의 이야기가 많다. 그중 어린 왕 단종에게 왕권을 빼앗아 왕이 된 세조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단종의 복위를 꿈꾼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를 일컬어 사육신이라 한다. 그중 박팽년의 현손인 박계창이 꿈속에서 나머지 다섯 인물을 보아 그 후 함께 제사를 지내게 됐다. 하빈사를 지어 제사를 지내다가 숙종 20년에 낙빈이란 현액을 하사받게 되었고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성대원군의 서원 철폐형으로 낙빈사가 서원과 철거되었지만 1924년 낙빈서원이 재건되었다. 육신사를 찾기 위해 마을 입구를 들어설 때 충심을 알 수 있는 문인 충절문을 지나게 된다.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는 곳이다. 이곳은 하빈면의 깊숙한 곳으로 묘골이라 칭하는데 지도상으로 봐도 산으로 둘러져있는 곳이다. 어떻게 보면 박팽년 가문은 삼족을 멸하게 되었고 여성들은 관노로 이끌리게 되었다. 며느리가 임신한 상태여서 아들이면 죽이고 딸이면 관노로 삼게 되는 상황에 친정의 도움으로 아들을 노비의 딸과 바꿔치기해 멸족을 피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이곳은 사람을 잘 볼 수 없는 구석진 곳이라 한적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에 이곳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조용한 육신사를 둘러보고 돌아간다. 이곳은 조용한 집성촌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구시와 달성군은 국비, 시비, 군비를 합해 한옥을 개축하고 기념관을 설립해 관광지로 조성했다. 육신사는 태고정과 도곡재에서 그 유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도곡재는 대사성 서정 박문현이 살림집으로 지은 건물인데 1980년대 도곡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하면서 도곡재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박종우는 인조 때 사람으로 한강 정구의 문인이다. 한강 정구를 알아보려면 성주에 있는 회연서원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 위치: 대구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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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박팽년의 후손들이 있는 곳, 육신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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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의 보물: 신비의 문화유산, 영월장릉
- 한국의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안타까운 이야기가 담긴 공간. 단종의 애달픈 운명이 고즈넉한 자연 속에 스며든 공간,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특별한 장소. 문화유산 관광지인 영월 장릉을 소개한다. 강원도의 영월의 자연 속에 위치한 이곳은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무덤으로, 한국의 역사와 전설이 어우러진 장소이다. 영월 장릉은 1970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며,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 매년 4월 마지막 주말에는 단종문화제가 열리며, 다양한 행사가 장엄하게 재현된다. 단종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심지어 그의 시신은 동강에 버려졌다. 다행히도 호장 엄흥도가 이를 수습해 장릉에 안치했고, 이 장릉이 현재의 영월장릉으로 불리고 있다. 장릉은 병풍석이나 난간석이 없고 석물도 단순하지만, 단종을 기리기 위한 정려비와 역사적인 기념비들이 위치해있다. 영월장릉이 신비한 문화유산으로 여겨지는 데에는 이러한 역사적인 이야기들만이 아니라, 장릉 주변의 소나무들이 능을 향해 굽어져 있어 독특한 경관을 자아내는 모습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이러한 모습들이 이 장소의 신비함을 더해주고 있다. 영월장릉을 방문하여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단종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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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 떠나는 힐링 타임! 보은 속리산 숲체험휴양마을
- "숲은 인간의 심령을 치유하고 안정감을 주는 곳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숲속에서 마주하는 자연의 소리, 풍경, 그리고 신선한 공기는 우리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며, 고된 일상 속 쌓여갔던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이번 기사에서는 청정 자연 속 신선한 자유를 만끽하고 몸과 마음을 힐링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보은 속리산 숲체험휴양마을을 소개한다.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 자락에 위치한 속리산 숲체험휴양마을은 조선시대 세조 등 많은 왕이 휴양한 역사를 가지고 있을 만큼 휴양지로써 오랫동안 사랑받는 곳이다. 이곳에는 기와집, 초가집, 통나무집으로 된 다양한 숙소가 있어 원하는 숙소를 골라 이용해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의 규모가 크다 보니 호랑이 전기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전기버스를 타면 보다 편하게 숙소에 오갈 수 있고, 투어처럼 숲체험휴양마을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도 만나볼 수 있다. 숲체험휴양마을에서 직접 담근 간장과 된장 또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데 보은군에서 생산한 재료를 이용해 직접 담근 간장과 된장을 숲체험휴양마을 식당 이용객들에게 제공하면서 이용객들의 구입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이용객들이 청정 자연뿐만 아니라 음식 속에서도 힐링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숲체험휴양마을의 세심한 노력이 느껴진다. 조용한 숲속에 자리 잡아 휴양하기 좋은 힐링 명소로 떠오르는 보은 속리산 숲체험휴양마을. 복잡하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낮과 밤, 온종일 숲에 머물며 휴식과 힐링의 시간을 만끽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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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장릉, 충절의 가치를 만날 수 있는 단종의 무덤
- 영월에 위치한 장릉은 조선 6대 왕이었던 단종의 무덤이다.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은 그의 무덤은 조선의 다른 왕릉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단종과, 그를 끝까지 지켰던 신하들의 충절을 만날 수 있는 곳, 영월 장릉을 만나보자.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인해 폐위되었는데, 당시 단종의 복위를 꾀하던 충신들 사육신과 생육신은 목숨을 걸고 단종의 복위를 꾀하였으나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단종의 사후, 후환이 두려워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는데 영월호장 엄흥도가 장사를 지내 가매장될 수 있었다. 단종은 세상을 떠날 당시 노산군의 신분으로 강등된 상태였으나 후에 단종대왕으로 복위되면서 가매장 상태였던 묘지가 다시 조성되었다. 장릉의 진입공간에는 일반적인 조선 왕릉과는 달리 단종의 충신들을 위한 건조물이 있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묘를 만든 엄흥도의 정려각, 노산군묘를 찾아 제를 올린 박충원의 낙촌비각,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신하들의 위폐를 모신 장판옥과 배식단은 충절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장릉은 작은 후릉의 양식을 따라 석물이 왜소하고 간단한 편이며, 병풍석과 난간석이 세워져 있지 않다. 또한 단종의 폐위와 관련된 정려비, 기적비, 정자 등이 있어 장릉을 둘러보면 어린 나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비운의 왕, 단종을 만나는 듯하다. 영월 장릉은 조선왕릉 능원 공간의 조형 형식 변화와 산릉제례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장릉 내에는 단종의 생애와 사육신의 충절을 재조명하기 위해 건립된 역사 박물관 단종역사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세종실록, 문종실록, 단종실록, 세조실록 등 단종과 관련된 국가 기록물들과 단종의 세자 책봉, 왕위 책봉, 사망 과정에 대한 기록물들을 볼 수 있으니 단종의 생애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같이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단종의 마지막을 만나볼 수 있는 영월 장릉. 이곳에서 충절의 절개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〇 위치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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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양주 수종사, 두물머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사찰
- 운길산의 정상 쪽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수종사는 멋진 풍경을 보러 온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다. 수종사 종무소의 위쪽에 있는 산신각에 오르면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풍경이 펼쳐진다. 바로 앞에는 수종사가, 저 멀리에는 너른 강이 펼쳐진 풍경은 사방이 푸릇푸릇해 마음의 짐이 깔끔히 털어지는 듯하다. 수종사는 대한민국 명승 제109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수종사를 건립하며 함께 만든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이 보물 제1808호, 출토유물들이 보물 제1789로 지정되어 있는 등 수종사에서는 중요한 문화재들을 다수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보물 2013호인 수종사 사리탑은 조선 태종 이방원의 딸 정혜옹주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승탑으로, 조선 전기의 사리탑 연구에 큰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수종사는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먼저, 고려 태조 왕건이 산 위의 이상한 구름을 보고 산에 가보았다가 우물 속에서 동종을 발견해 그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 세조가 운길산에서 종소리를 듣고 자다 깨어 주변을 찾아보니 18 나한상이 있는 바위굴에서 물소리가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것을 발견하고, 이곳에 절을 만든 뒤 이름을 수종사라고 붙였다는 설도 있다. 수종사는 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다도를 중흥시켜 다선으로 불린 초의선사가 수종사에서 다산 정약용과 차를 마시곤 해, 현재까지도 수종사는 삼정헌이라는 다실에서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삼정헌은 소정의 시주를 하면 관광객들도 차를 마실 수 있다고 하니 방문해서 차를 한 잔 마셔보자. 수종사는 입장료와 주차장 요금이 무료이며, 사찰이지만 관람시간이 7시에서 18시로 정해져 있으니 참고하여 방문해야 한다. 〇 위치 :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1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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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양주 수종사, 두물머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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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단종역사관, 비운의 왕 단종과 함께한 사육신과 생육신을 기리며
- 어린 나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비운의 왕, 단종. 그의 안타까운 죽음을 알리고 바로잡는 단종역사관을 단종의 묘인 장릉에서 만날 수 있었다. 단종은 조선의 6대 왕으로, 숙부인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인해 폐위되어 짧은 생을 끝내야 했던 비운의 왕이다. 단종의 아버지이자 세종의 맏아들인 문종은 병으로 인해 재위 2년 만에 사망하였다. 문종의 사망으로 인해 어린 나이로 단종이 왕이 되자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문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은 반역을 꾀했다. 그는 계유정난을 통해 단종을 영월에 유배되어 사약을 받게 하고 세조가 되었다. 사육신과 생육신은 세조에 의해 쫓겨난 단종의 복위를 꾀하던 충신들이다. 사육신은 목숨을 바쳐 절개를 지킨 신하들이고, 생육신은 살아서 싸운 신하들이다. 사육신은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세조를 ‘전하’라고 부르지 않는 등 단종에 대한 충심을 지켰고, 생육신은 벼슬을 내려놓고 단종을 추모하며 절개를 지켰다. 단종역사관은 단종의 생애와 사육신의 충절을 재조명하기 위해 건립된 역사 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세종실록, 문종실록, 단종실록, 세조실록 등 단종과 관련된 국가 기록물들과 단종의 세자책봉, 왕위 책봉, 사망 과정에 대한 기록물들을 볼 수 있다. 단종역사관의 모든 자료는 조선왕조실록을 근거로 제작되었으며, 그래픽패널, 영상물, 디오라마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단종의 생애를 알기 쉽게 전달한다. 단종의 죽음에 있어 중요한 키워드인 사육신과 생육신에 대한 전시물도 빼놓을 수 없다. 족쇄, 신장, 태, 장, 착고 등 조선 시대의 형구와, 태형, 장형, 유형, 사형 등 형벌을 설명하는 전시물들이 살벌하게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생육신과 사육신의 충절을 기린 위패는 형벌과 관련된 전시물을 보고난 후 더 마음에 와닿게 느껴진다. 왜곡된 단종의 역사를 바로잡는 중요한 역사관인 영월 단종역사관. 이곳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만날 수 있었고 이를 널리 알리고 바로 잡고자하는 마음을 만날 수 있었다. 〇 위치 : 강원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〇 단종역사관 홈페이지 : http://www.ywmuseum.com/museum/index.do?museum_n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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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단종역사관, 비운의 왕 단종과 함께한 사육신과 생육신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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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박팽년의 후손들이 있는 곳, 육신사 마을
- 조선시대는 왕권 다툼의 이야기가 많다. 그중 어린 왕 단종에게 왕권을 빼앗아 왕이 된 세조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단종의 복위를 꿈꾼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를 일컬어 사육신이라 한다. 그중 박팽년의 현손인 박계창이 꿈속에서 나머지 다섯 인물을 보아 그 후 함께 제사를 지내게 됐다. 하빈사를 지어 제사를 지내다가 숙종 20년에 낙빈이란 현액을 하사받게 되었고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성대원군의 서원 철폐형으로 낙빈사가 서원과 철거되었지만 1924년 낙빈서원이 재건되었다. 육신사를 찾기 위해 마을 입구를 들어설 때 충심을 알 수 있는 문인 충절문을 지나게 된다.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는 곳이다. 이곳은 하빈면의 깊숙한 곳으로 묘골이라 칭하는데 지도상으로 봐도 산으로 둘러져있는 곳이다. 어떻게 보면 박팽년 가문은 삼족을 멸하게 되었고 여성들은 관노로 이끌리게 되었다. 며느리가 임신한 상태여서 아들이면 죽이고 딸이면 관노로 삼게 되는 상황에 친정의 도움으로 아들을 노비의 딸과 바꿔치기해 멸족을 피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이곳은 사람을 잘 볼 수 없는 구석진 곳이라 한적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에 이곳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조용한 육신사를 둘러보고 돌아간다. 이곳은 조용한 집성촌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구시와 달성군은 국비, 시비, 군비를 합해 한옥을 개축하고 기념관을 설립해 관광지로 조성했다. 육신사는 태고정과 도곡재에서 그 유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도곡재는 대사성 서정 박문현이 살림집으로 지은 건물인데 1980년대 도곡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하면서 도곡재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박종우는 인조 때 사람으로 한강 정구의 문인이다. 한강 정구를 알아보려면 성주에 있는 회연서원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 위치: 대구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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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박팽년의 후손들이 있는 곳, 육신사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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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대표 여행 코스 영양군 선바위관광지구 '영양고추홍보전시관'
- 경상북도 영양에 위치한 선바위관광지구는 농특산물직판장, 분재수석야생화테마파크, 고추홍보전시관, 민물고기 생태관 등이 있어 주변 경관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영양 대표 관광지다. 선바위란 바위를 깎아 세워진 듯, 거대한 촛대가 세워진 듯 보이는 바위를 지칭하며, 남이포는 석벽과 절벽을 끼고 흐르는 두 물 줄기가 합류하는 큰 강을 말한다. 두 곳에는 조선 세조 때 역모자를 평정시켰다는 남이장군의 전설이 내려오며 영양의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선바위관광지구에는 선바위, 남이포 뿐 아니라 아름다운 분재 예술품을 만나볼 수 있는 ‘분재야생화테마파크’, 희귀한 어종부터 다양한 민물고기를 관찰해보는 ‘민물고기전시관’, 영양의 대표 상징인 고추를 더 알아가는 ‘영양고추홍보전시관’이 있다. 영양은 예로부터 고추가 유명하여 이를 토대로 고추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1982년 지방에서 수비초의 종자거래가 유행했는데 전국 농산물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고나서 수비초가 유명해져 오늘날 영양고추가 되었다. 수비초는 한국인의 식성에 가장 좋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내병성이 약하고 수량성이 낮아 지금은 일부 농가에서 쓰인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재래종 고추 육성에 힘을 쏟고 있는 영양고추시험장이 있다. 영양군의 지질은 화강편마암과 수성암계로 구성되어있는데 고추재배지로서 아주 적합한 조건이다. 영양고추는 과피가 두껍고 맛은 맵고 달고 향기롭다는 평이다. 밭에서 수확하자마자 맑은 물로 흙과 먼지를 씻어내고 고추전용 건조시설에서 최적의 온도로 건조해 위생적이고 윤기나며 영양가 손실이 적다. 영양고추로 만든 음식은 정갈하고 당질, 비타민 A1, B2, C가 풍부하며 김장 김치로 담구면 잘 시어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영양고추홍보전시관 지상 2층 규모로 구성되어있다. 테마관에는 고추이야기와 고추 재배 변천과정, 고추 재배기술, 생활 속의 고추 등과 관련한 내용을 전시하고 있다. 홍보관에는 영양고추의 우수성, 영양고추 축제, 영양고추 재배기술 등에 관한 내용이 있다. 영상홍보실에는 영양군의 주유 문화재와 관광, 특산물을 소개하고 있다. 농수산물직판장에는 영양군 전체에서 생산되고 있는 농산물 일체를 갖추고 있다. 영양의 상징 영양고추의 매콤한 매력 뿐 아니라 영양의 다채로운 모습을 만나고 싶다면 영양군 선바위관광지구 방문을 놓치지 말자. ○위치: 경북 영양군 입암면 영양로 88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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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대표 여행 코스 영양군 선바위관광지구 '영양고추홍보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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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아산 온양온천
- 아산시 온천동에 위치한 온양온천은 현존하는 문헌기록상 그 출전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백제, 통일 신라시대를 거쳐 그 역사가 근 1300여년이 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고려시대에 온수군(溫水郡)이라 불리었던 것으로 보아 실제 온천의 역할을 수행해 온 기간은 600여년이 된 것으로 보여진다. [사진출처: 아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특히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 15년(1433년) 정월에 안질치료차 행차한 후, 세조, 현종, 숙종,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께서 온궁(온양행궁)을 짓고 휴양이나 병의 치료차 머물고 돌아간 다수의 기록과 유적들이 남아있으며, 또한 현종, 숙종때에는 온천에 임행하여 과거를 보게하여 인재를 발굴하였던 기록이 남아 있다. 일제 때에는 온양온천주식회사가 독점 온천장을 경영하고 1927년 이후는 경남 철도주식회사가 경영하던 신정관과 일본인 소유의 탕정관 등 2개소 뿐이었던 것이 1963년 신천개발이 개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은 38개 공의 온천공이 온양온천 중심부에 걸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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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아산 온양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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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구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켜준 돌성, 보령시 충정수영성
-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은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위해 돌로 높이 쌓아올린 석성(石城)이다. 조선 중종 4년(1509)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이장생(李長生)이 축성, 충청수영(忠淸水營)의 외곽을 두른 1,650m의 장대한 성(城)으로 자라(鱉)모형의 지형을 이용 높은 곳에 치성(稚城) 또는 곡성을 두어 바다와 섬의 동정을 살폈고 해안방어의 요충지였다. 사방(四方)에 4대 성문(城門)과 소서문(少西門)을 두었고, 동헌을 비롯한 관아건물 영보정(永保亭), 관덕정(觀德亭), 대섭루(待燮樓), 능허각(凌虛閣), 고소대(姑蘇臺) 등이 있었으나 허물어졌고, 서문 망화문(望華門)과 건물로는 진휼청(賑恤廳), 장교청(將校廳), 공해관(控海館)이 보존되고 있다. [사진출처 : 보령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망화문은 화강석을 다듬어 아치(Arch)형으로 건립하여 발전된 석조예술을 볼 수 있으며, 오천항(鰲川港)은 백제때부터 중국과 교역하던 항구로서 회이포(回伊浦)라 불리었고, 고려시대에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하여 많은 군선(軍船)을 두었으며, 세조 12년(1466년)수영(水營)을 설치, 충청수군의 최고사령부로 서해안을 방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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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구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켜준 돌성, 보령시 충정수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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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는 고양 서오릉
- 서오릉이란 조선왕조의 다섯 능 즉 경릉(敬陵,덕종과 소혜왕후의 능), 창릉(昌陵,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능), 익릉(翼陵,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의 능), 명릉(明陵,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의 능), 홍릉(弘陵, 정성왕후의 능)이 이곳에 모여 있어서 일컫는 명칭이다. 서오릉 지역이 왕실묘역으로 선택된 이유는 세조 3년(1457)에 세자 장(덕종)이 사망하자, 풍수지리설에 의해 경릉을 쓰고부터이다. 서오릉에는 이 5개의 능 외에도 조선왕조 최초의 ‘원’으로 명종의 첫째 아들인 순회세자의 무덤인 순창원과 숙종의 추궁으로 많은 역사적 일화를 남긴 희빈 장씨의 대빈묘가 있다. 서오릉은 동구릉 다음으로 큰 면적의 조선왕조 왕실의 가족무덤이며 고양시청에서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으로 이어진 55번 지방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서오릉고양시 덕양구 용두동에 위치하며 경릉, 창릉, 익릉, 명릉, 홍릉이 모여 있어 서오릉이라고 한다. 서북방향으로 서삼릉이 위치하는데 불과 2.5㎞정도 떨어져 있어 서팔릉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하지만 발음이 좋지 못하다. 구리시의 동구릉 다음으로 큰 조선왕조의 왕실 족분군이며 동남쪽으로 서울 은평구와 붙어 있다. 현재 보호구역은 187만㎡ 정도 된다. 1457년(세조3) 세조는 원자였던 暲(추존왕 덕종-예종의 형)이 죽자 길지를 물색케 했다. 서오릉터가 길지로 간택되자 세조가 직접 답사하여 경릉터로 정하여 서오릉의 조성이 시작되었다. 경릉세조 때부터 시행된 동원이강식의 쌍릉이다. 특이한 점은 보편적인 왕릉 조성과는 달리 왕은 오른쪽, 왕비는 왼쪽에 봉분이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왕비의 능이 왕의 능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화려하여 왕과 왕비의 능을 혼동하게 할 여지가 있다. 이렇게 조성된 원인이 있다. 덕종은 예종의 형으로서 사망 당시 왕이 아닌 대군이었고 게다가 세조가 능제간소화정책을 추진하던 때였다. 그래서 덕종릉은 난간석, 망주석이 없다. 하지만 소혜왕후릉은 남편이 덕종으로 추존된 뒤 조성되었으므로 왕릉의 예를 따랐다. 이에 왕비의 릉이 왕의 릉보다 훨씬 화려한 것이다. 덕종(1438~1457, 20)은 7대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暲, 자는 原明이다. 용모가 준수하고 예의가 있어 할아버지인 세종과 소헌왕후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으나 몸이 약하여 20세 나이로 사망한다. 덕종의 차남인 9대 성종이 ‘덕종’으로 추존했다. 첫째아들이 낙타고개에 무덤이 있는 월산대군이다. 소혜왕후(1437~1504, 68)는 세조1년에 세자빈에 간택되어 월산대군과 성종을 낳았다. 세조3년에 덕종이 사망했으니까 3년동안 둘을 낳은 것이다. 아녀자가 지켜야할 도리를 책으로 펴 낸 『女訓』을 찬하였으며 덕종이 죽은뒤 47년을 더 살았다. 더 살수도 있었는데 연산군이 생모 윤씨가 폐위, 사사되었다고 관련자들을 처단할 때 그를 나무라자 연산군이 머리로 받아서 일어나지 못하였다고 한다. 창릉조선 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이다. 석물의 배치는 여느 능제와 같이 『국조오례의』에 따라 조성했는데, 고석에 고리모양을 세기고 팔각장명등의 지붕돌 상륜부에 있는 연잎 등 개성있는 조각미가 보인다. 예종(1450~1469,20)은 경릉에 있는 덕종의 동생인데 이름은 晄, 자는 明照이다. 형이 죽은 뒤 세자가 되어 1468년 9월에 왕위를 물려받았는데 14개월만에 사망하였다. 안순왕후(?~1498)는 청원부원군 한백륜의 딸이다. 1460년 세자빈으로 책봉된 장순왕후 한씨(한명회의 딸)이 병사하자 2년 뒤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남편이 죽은 뒤 29년을 더 살다가 사망한다. 익릉19대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1661~1680,20)의 능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하여 홍살문에서 시작되는 참도가 큰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 천연두 발병8일 만에 사망한다. 20세에 사망하였지만 세 딸의 어머니였으며, 두딸은 그녀보다 먼저 사망하였고, 마지막 남은 딸도 곧 사망하였다.익릉의 특징은 숙종의 능제 간소화정책이 내려기기 전 무덤이면서 임진왜란(1592~1598)이후의 변형된 양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장대한 석물과 팔각장명등은 그 특징을 반영한다. 명릉19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2계비 인원왕후의 능이다(원비인 인경왕후 김씨의 능은 익릉이다.). 숙종(1674~1720,60)은 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장남이다. 열네살에 즉위하여 45년간 집권하였다. 숙종이 집권하던 시기는 당쟁이 가장 심했던 시기로서 남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의 붕강과 정쟁이 심화되어 나라가 파탄에 이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숙종은 대동법의 실시, 상평통보 주조를 통한 상업활동의 지원 등을 실시하여 많은 치적을 남겼다. 또한 북한산성을 1711년 크게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만들고 같은 시기 북한산성행궁지를 조성한 왕이기도 하다. 인현왕후(1667~1700,34)는 인경왕후의 뒤를 이은 숙종의 두 번째부인이다. 후사가 없는 죄로 희빈 장씨에게 왕비자리를 뺐겼다가 갑술환국으로 서인이 정권을 잡으면서 복귀되었다. 하지만 건강악화로 7년 만에 사망하였는데, 희빈 장씨의 저주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여하튼 덕분에 희빈 장씨는 인현왕후 덕분에 賜死되었다. 인원왕후(1687~1757,71)는 숙종의 제2계비이며 경은부원군 김주신의 딸이다. 김주신묘 및 신도비는 대자동에 있다. 원래 인원왕후는 명릉에서 400여 보 떨어진 언덕에 자신의 자리를 잡아두었는데 영조가 현재의 위치에 능을 썼다고 한다. 홍릉정성왕후 서씨(1692~1757)의 능이다. 영조는 그녀를 무척 좋아했는데 생전에 옆자리에 누울 예정으로 자신이 안치될 정혈에 십자를 새긴 돌을 묻어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손자인 정조는 구리시의 동구릉에 있는 원릉에 할아버지를 묻었다. 그래서 정성왕후 서씨의 오른편은 영영 비어있게 되었다. 순창원13대 명종의 장자인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원.순회세자(1551~1563,13)는 13대 명종의 장자로 태어나 1557년(명종 12) 7세의 나이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13세에 요절하였다. 공회빈 윤씨(?~1592)는 윤옥의 딸로 1559년에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순회세자가 요절하자 30년을 홀로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수경원제21대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1764)의 원이다. 사적 제198호인 서오릉(西五陵) 내 명릉(明陵)과 익릉(翼陵)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연세대학교 내에 있었으나 1968년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1899년(고종 36)에 정자각과 비각을 새로 신축하고 비석도 새로 세웠는데 정자각과 비각은 연세대학교 내에 그대로 남아 있어 비각과 비석이 서로 떨어져 있다. 영빈 이씨는 영조의 후궁 가운데 가장 총애를 받은 후궁으로 세상을 떠나자 영조는 후궁 가운데 으뜸의 격식으로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도록 명하였다. 대빈묘대빈묘(大嬪墓)라고도 한다. 원래는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문형리에 있었으나 1970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희빈 장씨(?~1701)는 조선 역사상 유일하게 궁녀의 신분으로 왕비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서오릉 내 경릉에서 밑으로 내려와 옆으로 조금 돌아가면 나오는 서오릉에서 가장 후미진 곳에 작은 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위치나 묘의 전체적인 꾸밈새, 석물 등이 일반 사대부 집안 묘보다도 초라한 것을 통해 희빈 장씨에 대한 후대 역사가들의 평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장할 때 숙종의 명릉 옆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게 하였다. 주소 : 덕양구 서오릉로 334-92(용두동 산47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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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는 고양 서오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