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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5.1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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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은 예로부터 구릉과 산성을 방수의 요충으로 중시하였다. 이에 각종 성을 쌓았고 평지에는 성을 만드는 경우가 드물었다. 지방행정관서가 있는 곳의 평지에 축성된 대구 읍성은 1590(선조 23)에 처음 만들 때에 흙으로 쌓은 토성으로 만들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허물어지고 1736(영조 12)에 돌로 다시 쌓게 돼 석성이 되었다.

 

성에는 동서남북 4개의 정문이 있었는데 동문은 진동문, 서문은 살서문, 남문은 영남제일관, 북문은 공북문이라고 칭하였다. 1906년 읍성이 철거될 때 성문들도 함께 철거되었는데 현재 영남제일관이 있는 것은 1980년에 수성구에 새로 옮겨 조성하였다.


그 규모나 품격, 위치가 원형과 상이하여 동떨어졌다는 평을 받지만 대구제일의 향토상징 관문으로서 금호강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대구시민들에게 대자연의 운치를 마음껏 보여주는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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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영영축성비가 있다. 높이 259cm 에 이르는 큰 비석이다. 이는 1736(영조 12)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 도호부사인 민응수가 임진왜란으로 허물어진 대구 읍성을 석성으로 축성하고 난 뒤 기념으로 세운 것으로 당시 대구 읍성의 규모와 작업상황이 적혀있다. 원래는 남문 밖 관덕정 터에 세워졌으나 1906년 대구 읍성이 헐리면서 옛 달성군청 부근으로 이전되었고 1932년 대구 향교로 이전했다가 1980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대구부 수성비도 주위에 있는데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였던 김세호가 경강감영의 성을 대대적으로 보수 후 그 사실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이 또한 남문 밖에 세워졌으나 1906년 대구 읍성이 헐리면서 자리 잡지 못하다가 1932년 대구 향교로 옮겨졌고 1980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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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제일관의 새롭게 이전된 위치는 주변보다 높은 곳이어서 전망이 좋다. 금호강을 보면서 야경도 찍기 좋은 곳이다. 주변에는 망우당공원과 금호강생태공원, 만촌체육공원 등 다양한 공원이 함께 있어 산책하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위치는 대구 수성구 팔현길 24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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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읍성의 남문, 영남제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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