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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6.2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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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는 천봉산 봉우리를 약간 오른쪽으로 둔 정남향을 하고 있는 사찰로서
6·25동란 이전까지만 해도 10여동의 건물들이 유전되고 있었으나 여순사건때 모두 불타버리고 거의 폐허가된 상태였다.
그러나 다행이도 당시 극락전 건물만 남아있게 되었다.
사찰의 연혁을 보면 오랜 전통을 갖고있어 조선사찰사료에 의하면 초창(初創)은 신라지증왕시 아도화상(阿道和尙)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 후로 고려시대에 와서는 조계 제오세 원오국사(圓悟國師)가 중건하였고 조선조로 넘어와서는 영조 43년에 중건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01.대원사.jpg


건물의 규모를 보면 정면 3간, 측면 2간의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 형식의 건물로 기단(基壇)은 전면에 1m이상의 잡석축대(雜石築臺)를 쌓고 양면 및 배면은 얕은데 전면중앙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초석은 자연석으로 덤벙 주초방식이며 기둥은 약간 배흘림이 있고 우주에는 미세한 귀솟음이 보인다.
공포의 형식은 형방위호부터 짜여진 다포형식으로 전후 각주간에는 공간포를 각각 2구씩 배열하였으며
출목(出目)은 외삼출목(外三出目), 외사출목(외사출목)으로 외칠포작(外七包作), 외구포작(外九包作) 형식이다.
외부쇠서는 삼앙일수설(三仰一垂舌)로서 앙설밑에는 연봉을 조출시켰다.
 
03.대원사.jpg 04.대원사.jpg

가구(架構)를 보면 대량(大梁)이 내고주(內高柱)에 끼워져 상부가구재 (上部架構材)를 받고 있으며 종량(宗梁은 대량(大梁)위에 놓여진 동자주(童子柱)가 받게 하였다.
천정은 하중도리(下中道里) 위로부터 우물천정으로 처리하였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단천은 내외부 금모노단청(錦毛老丹靑)을 하였다.
불단위로는 중앙에 아미타불이 본존불로 모셔져 있는데 좌우보처(左右補處)로 두 협시불(脇侍佛)이 있어야 하나 한불은 6·25후 분실하였다 하며 한불의 협시불만 우측에 남아있다.
 
 
주소 : 보성군 문덕면 죽산길 5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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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이 깃든 천년 고찰 대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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