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판이 올라가는 영도다리는 상판이 올라가는 시기에 관광객이 몰려온다. 영도다리는 1934년 최초로 준공되었으며 상판이 올라가는 횟수는 매월 7번에서 2번으로 바뀌었다. 1966년 9월 증가하는 차량통행으로 인해 도개 기능을 멈춘 부산의 명물이다.
영도다리는 개통 당시 큰 배가 지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상판이 열리는 구조로 이루어진 도개교이다. 다리의 상판이 올라가면 그 밑으로 배들이 시간에 맞춰 통과했다.
영도다리는 옛 추억이 담긴 곳으로 중년세대는 영도다리만 보면 그 당시 불렀던 “영도다리가 끄떡끄떡~”을 흥얼거린다. 또, 말을 듣지 않았던 어린이들에게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소리를 하며 울음보를 터뜨리게 만든 다리이기도 하다.
영도대교는 ‘하늘로 치솟는 다리’, 즉 도개교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피난민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 영도대교에 가면 친인척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영도대교 인근은 피난민으로 가득했다.
피난민들이 모여들며 헤어진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피난민의 사연을 듣고 상담하는 점집들이 성업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영도다리는 피난민들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영도다리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킬 날을 기다리며 영도다리 주위로 피란민 촌을 만들어 살았다.
영도다리는 한국전쟁 이후 생활고에 지친 피난민들의 애환과 망향의 슬픔을 간직한 다리이며 이와 동시에 우리나라 근대사와 함께 해온 다리이자 근대 부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영도다리에는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 가사와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이것은 당시 피난민들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영도대교는 한국 근현대사의 상징적 건축물로 평가되어 2006년 11월 25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었다.
2013년 11월 27일 기존 4차선 도로를 6차선으로 확장공사 완료하였으며, 한 달에 2번 둘째 주와 넷째 주 수요일 오후 2시~2시 15분에 도개를 하여 많은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부산의 명물로 옛 명성을 다시 찾고 있다.
영도다리가 올라가는 장면을 잘 볼 수 있는 장소로 유라리 광장이 있다. 이곳에 영도다리 포토존을 설치되어 있어 영도다리의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찍을 수 있다.
유라리 광장에는 짐 보따리를 든 소녀와 큰 짐을 머리에 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재연한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이는 전쟁 당시 피난민의 모습을 형상케 해 가슴을 찡하게 한다.
유라리 광장은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국도 7호선의 시작과 종점인 이곳을 기념하는 광장이다. 유럽의 ‘유’와 아시아의 ‘아(라)’ 그리고 사람, 마을이 모여 즐겨 노는 소리를 뜻하는 ‘리(이)’의 조합으로 유럽과 아시아인이 함께 어울려 찾고 즐기는 장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도다리의 도개행사에서는 서서히 올라가는 영도다리를 볼 수 있으며 위 모습은 영도다리가 끄떡끄떡 콧노래가 절로 나오게 만든다. 부산의 여행 명소인 영도다리, 한번 방문해 보며 옛 정서를 느껴보기를 추천한다.
○위치 : 부산 중구 중앙동7가 영도대교
○영도다리 도개행사 시간표 : 매월 2, 4주 수요일 오후 2시~2시 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