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유신은 통일신라를 만든 1등 공신이다. 그는 금관가야의 구해왕 후손으로 아버지는 서현, 어머니는 만명부인이다. 금관가야의 후손이다보니 당시 진골 귀족으로 편입이 되었지만 왕족 출신과 통혼하기는 어려웠다. 신라는 김씨, 금관가야 후예들을 신김씨라 칭하였다.
이렇게 진골출신인 김유신은 신라를 주도한 대귀족들과 차이가 있었다. 그런 면모를 그의 누이와 김춘추(태종무열왕)의 혼인 과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누이가 김춘추와 사통하여 임신을 하자 김유신은 누이를 화형 시키고자 하였지만 선덕여왕이 나서서 극적으로 그들을 혼인하게 만들었다. 김유신의 가문이 왕실과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혼인이 어려웠음을 보여주는 설화이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통일신라를 만든 1등공신이 되었다는 점을 보면 가히 영웅이라 칭할 수 있다.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용화향도라고 일컬어지던 낭도를 이끌며 전투에서 공로를 세우며 이름을 날리게 됐다. 김춘추와 서로 목숨을 건 맹세를 통해 정치적 결속을 하게 되면서 성장하게 되었다.
상장군이 되면서 백제 원정군의 최고 지휘관이 되어 전략상 요충지인 가혜성, 성열성, 동화성 등 7개 성을 정복하였다. 수많은 전투를 치루고 승리해 대장군까지 오르며 결국엔 통일신라의 기반을 다졌다.
김유신의 묘는 지름이 30m에 이르고 주위에는 호석과 비가 있다. 이는 통일신라시대 왕릉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는 후대에 흥무대왕으로 추존되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호석에 새겨진 십이신장상은 모두 평복에 무기가 있는데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조용한 산책로가 있어 역사의 흔적을 돌아보며 걸을 수 있다.
○ 위치: 경상북도 경주시 충효2길 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