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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과 북한산성 잇는 '탕춘대성' 국가지정문화유산으로 발돋움
-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수도성곽인 한양도성, 대피성인 북한산성과 함께 조선후기 도성 방어체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화유산인 「탕춘대성」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고 있는 「탕춘대성」은 3개의 성이 유기적인 하나의 도성 방어체계를 구축하여 운용될 수 있도록 쌓은 독창적인 방어성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도성 방어체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하여 숙종 41년(1715년) 축조를 시작하여 영조 30년(1754년)에 완성 하였다. 이번에 사적으로 지정된 범위는 한양도성 서북쪽의 인왕산 기차바위에서 홍지문(弘知門)을 지나 북한산의 향로봉 아래까지 이어지는 총 길이 5,051m 구간이다. * 홍지문(弘知門) : 1715년 축조된 탕춘대성의 성문(1921년 홍수로 무너진 후 1977년 복원) * 총 길이 5,051m : 석성 구간 3,549m, 토성 구간 758m, 자연암반 구간 744m 「탕춘대성」은 평시에는 성 안에 설치된 군량 보관창고인 평창(平倉)을 지키고, 전시에는 평창(平倉)에 비축했던 군량을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에 보급하는 기지 역할을 하였다. 한양도성을 지키기 어려워지면 조정과 도성민이 북한산성으로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조선후기 3개의 성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방식의 도성 방어체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성곽의 잔존상태가 양호하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인접한 성을 연결하면서 군량 보급과 지휘를 하는 배후 성으로 한양도성, 북한산성과 함께 조선후기 도성 방어체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현재 문화재청은 서울시와 함께 ‘한양의 수도성곽’이라는 이름으로 탕춘대성, 한양도성, 북한산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으며, 지난해 9월 유네스코에 예비평가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 유네스코 예비평가(Preliminary Assessment) : 등재신청 초기 단계에 자문기구와 당사국이 논의하여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을 검토하는 단계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서울시와 협력하여 ‘한양의 수도성곽’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노력하고, 탕춘대성의 가치를 온전히 전승하고 국민과 함께 향유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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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과 북한산성 잇는 '탕춘대성' 국가지정문화유산으로 발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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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에 위치한 아름다운 절, 전남 해남군 미황사
- [해남달마산미황사 - 출처 : 문화재청] 대한민국 육지 가장 남쪽에 위치한 아름다운 절로, 한국관광공사에서 '2019-2020 한국관광100선'으로 선정한 전라남도 해남군 미황사. [미황사 대웅전 - 출처 : 문화재청] '신라 경덕왕 때, 금인(金人)이 타고 있는 배가 달마산에 닿았고, 그 안에는 화엄경, 법화경, 비로자나불, 탱화, 검은 돌 등이 실려있었다. 의조 화상과 사람들이 배 안의 물건에 대해 의논하는 중에 검은 돌에서 검은 소 한마리가 나와 커다란 소가 되었다. 의조 화상은 꿈에서 금인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소를 앞세워 가다가 한번 누웠다 일어난 자리에는 통교사를 짓고 마지막으로 쓰러진 자리에는 미황사를 창건했다' 1692년(숙종18년), 미황사 사적비에 적힌 미황사 창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미황사 지하루 - 출처 : 문화재청] 미황사의 미(美)는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황(黃)은 금인의 빛깔을 의미한다고 한다. [대웅전 목조삼존불 - 출처 : 문화재청] 미황사는 과거 한반도에서 꽤나 유명한 사찰이었던 모양이다. 고려 시대 기록에 따르면 미황사가 위치한 달마산으로 중국의 학자와 관리들이 내왕한 사실이 담겨 있다. 또, 조선 전기에는 불사와 법회들로 활발했다고 한다. 불행히도 조선 선조 때 일어난 정유재란(1597년)으로 모든 전각과 기록까지 소실되었지만, 이듬해인 1598년, 만선이 미황사를 중건하고 서산대사의 제자들이 미황사로 내려오면서 조선시대 후기까지 중심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대웅전 내부탱화 - 출처 : 문화재청] 현재 미황사는 대웅전, 달마전, 응진당, 명부전, 세심당 등이 중건·복원되었고, 당간지주, 부도군, 사적비 등의 문화재가 남아 있다. 미황사 대웅전은 보물 제947호로 지정되어 있고 내부에는 삼존불과 후불탱화가 걸려 있다. 법당 뒤편에는 목궤에 넣어둔 매우 상한 괘불이 있는데, 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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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을 따라 듣는 ‘칠궁이야기’ 특별답사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경복궁관리소(소장 박관수)는 오는 16일부터 24일까지 「표석을 따라 듣는 칠궁이야기」 특별답사 프로그램을 주말(토·일) 2주간 오전 10시와 오후 2시(1일 2회 총 8회)에 진행한다. 칠궁은 조선시대 역대 왕이나 왕으로 추존된 이들을 낳은 생모이면서 왕비가 아닌 후궁 일곱 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칠궁에는 원래 조선 제21대 왕 영조가 생모 숙빈 최씨를 위해 세운 ‘육상궁(毓祥宮)’만 있었는데, 이후 저경궁(선조의 후궁, 원종(추존왕, 인조의 아버지)의 생모 인빈 김씨 사당), 대빈궁(숙종의 후궁, 경종의 생모 ‘장희빈’의 사당), 연호궁(영조의 첫째 아들 진종(추존왕)의 생모 정빈 이씨 사당), 선희궁(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 사당), 경우궁(정조의 후궁, 순조의 생모 수빈 박씨 사당), 덕안궁(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생모 순헌황귀비 엄씨 사당)이 육상궁 내로 이전된 후, 이를 통틀어 ‘서울 육상궁(사적 제149호)’으로 부른다. * 신위: 망자의 영혼이 의지할 자리로 위패 혹은 신주(神主)나 지방(紙榜) 등을 일컬음 문화재청은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칠궁을 시범개방 한 이후 올해 1월부터 휴궁일(일‧월요일)을 제외한 화~토요일 매일 7회씩 칠궁을 개방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전문 해설사의 안내로 도보답사는 물론, 칠궁의 역사와 해당 인물에 대한 특별해설도 들을 수 있어 더욱 특별한 답사가 될 것이다. 답사 동선은 칠궁에서부터 출발하여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 덕안궁이 원래 위치했던 곳까지 2개로 나눴다. 제1동선은 칠궁에서 경우궁 터를 지나 대빈궁 터로 마무리되며, 제2동선은 칠궁에서 선희궁 터, 덕안궁 터, 저경궁 터로 마무리된다. 답사는 16일부터 24일 주말(토‧일) 4일간만(1일 2회, 오전 10시, 오후 2시) 진행되며, 답사 소요시간은 제1동선은 90분, 제2동선은 120분이다. 1회당 최대 관람인원은 40명이며, 답사비는 성인 1인당 1만원, 초중고생은 1인당 5,000원이다. 예약 관련 공지는 경복궁관리소 누리집(http://www.royalpalace.go.kr)에서 추후 공지 할 계획이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경복궁관리소는 올해 1월 궁능유적본부 출범에 맞춰 경복궁 내 활용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경복궁과 인물, 경복궁과 조선왕릉을 하나의 이야기로 잇는 특별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표석을 따라 듣는 칠궁이야기」는 그 첫 번째 시도로 앞으로도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시민에게는 더 많은 문화향유 기회를 제공하고, 외국인 관람객에게는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노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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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을 따라 듣는 ‘칠궁이야기’ 특별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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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과 안순왕후의 꿈, 서오릉 ‘가을愛’ 개최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서부지구관리소(소장 심동준)는 오는 20일 오후 3시부터 4시 20분까지 고양 서오릉 재실 앞에서 서오릉 ‘가을愛(애)’ 행사를 진행한다. 고양 서오릉은 2016년 명릉(숙종과 인현왕후‧인원왕후)을 시작으로 이후 2017년에 경릉(추존 덕종과 소혜왕후), 2018년에 홍릉(영조비 정성왕후)의 이야기를 다뤘다. 올해는 창릉(예종과 안순왕후)의 주인공인 제8대 임금 예종과 두 번째 왕비 안순왕후를 주제로 공연을 펼친다. 올해는 1년 2개월의 짧은 재위기간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전해지는 예종의 업적과 인품, 안순왕후와의 삶을 이야기 형식의 공연으로 선보인다. 예종과 안순왕후의 만남부터 13개월의 통치를 중심으로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꿈을 궁중잔치의 형식으로 소개할 계획이다. 공연은 예종과 안순왕후의 일생 해설을 시작으로 어린 예종과 소훈 한씨(안순왕후)의 입궁을 다룬 궁중정재 <아박무>, 예종의 총명함을 풀어낸 궁중정재 <가인전목단>과 창작무용, 안순왕후의 궁궐 생활 등을 소개하는 창작무용, 마지막으로 궁중정재 <무고>와 궁중 줄타기 등의 공연으로 관람객에게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관람료는 무료(입장료 별도)이며 공연 시간 중 서오릉을 방문한 관람객 모두에게 개방한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을 국민 누구나 더욱 친근하게 느끼고 즐겨 찾는 문화공간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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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과 안순왕후의 꿈, 서오릉 ‘가을愛’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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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에서 조선의 세자빈 혼례를 고하다 「2019 묘현례」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나명하)와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은 오는 20일부터 29일까지 기간 중 금·토·일요일 총 6일간(하루 2회씩, 13:00, 15:00) 「2019 묘현례 ‘조선의 세자빈, 혼례를 고하다’」를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정전에서 재현한다. 종묘 정전에 여성이 참여하는 유일한 왕실의례 「묘현례」 묘현례는 세자빈이 가례를 마친 후, 조선 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의례로, 종묘에서 행해지는 국가의례 중 왕실 여성이 참여했던 유일한 행사다. 이번 행사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조선 시대 최초 묘현례인 숙종 22년의 묘현례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당시 세자였던 경종과 세자빈인 단의빈이 가례 후 치렀으며, ‘숙종 22년 묘현례’가 숙종과 인현왕후의 행차로 왕실가족이 함께 종묘를 방문한 유일한 행사로 기록돼 있다. 묘현례에 참석했던 단의빈(추존 단의왕후, 1686∼1718) 심씨는 조선 제20대 왕 경종의 비로, 1696년 세자빈에 간택되어 경종과 가례를 올렸다. 병약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왕실 어른과 경종을 정성스레 보필했으며, 1718년(숙종 44년) 갑작스러운 혼절로 33세 나이에 돌연사 했다. 이후 숙종은 단의(端懿, 단아하고 의연함)의 시호를 추서하고 ‘단의빈’으로 삼았다. 경종이 등극한 후 단의왕후로 추존되었다. 공모로 선발된 시민 배우 출연 행사는 국왕과 왕세자의 ‘신실 봉심’ 중심으로 전개되며, 왕비와 세자빈의 국궁사배가 진행된다. 등장인물 중 왕비와 왕세자, 세자빈, 상궁 역할은 공모로 선발된 8명의 시민 배우가 맡았다. 국왕과 왕세자는 근엄하면서도 조선의 예를 갖추는 면복(冕服)을 입고, 왕비와 세자빈은 화려한 색의 적의(翟衣)를 입는다. 행사 종료 후 관람객들은 출연진들과 사진촬영을 할 수 있다. * 봉심(奉審): 왕명을 받는 사람 혹은 국왕께서 직접 종묘를 찾아뵙고 신실을 점검하는 의례 * 국궁사배(鞠躬四拜): 국가의례에서 행하는 배법으로 공수자세를 기본으로 함 이번 묘현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그 중에서도 조선왕조의 얼이 깃든 아름다운 정전에서 조선 시대 왕실여성의 문화를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행사기간에 별도의 참가비 없이 관람할 수 있으며, 종묘 입장료(성인 1,000원 / 만 24세 이하‧만 65세 이상 무료)는 별도다. 더 자세한 사항은 한국문화재재단(☎02-3210-4803)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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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에서 조선의 세자빈 혼례를 고하다 「2019 묘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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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맥의 끝자락, 조계산에는 가을이 숨어있다. - 선암사
- 소백산맥의 끝자락, 조계산에는 가을이 숨어있다. 알록달록한 옷으로 바꿔 입은 나뭇잎과 투명하고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이곳은 전라남도 순천에 위치한 선암사로 가는 길이다. 조계산 도립공원에서 선암사로 도보로 이동하다 보면, 가을의 파란 하늘과 알록달록한 자연의 조화가 눈에 들어온다. 절반쯤 걷다 보면 돌다리가 하나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승선교'이다.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 위로 아치형의 돌다리는 조선 숙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본래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겠지만, 이제는 자연의 하나로 녹아든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그 뒤로 보이는 강선루의 한국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져 더욱 가을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승선교 뒤로 언뜻 보였던 강선루를 지나 선암사로 가다 보면 그 근처에 이곳을 오고 가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쌓은 돌 탑이 곳곳에 있다. 무엇을 바라며 돌멩이를 쌓았을지, 얼마나 많은 소원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선암사 입구 오른쪽에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그곳을 지키고 있는데, 바닥에 떨어진 은행 잎은 마치 노란색 카펫을 바닥에 깔아 놓은 것만 같다. 도시에서는 이처럼 울창한 나무를 쉽게 볼 수 없어 많은 방문객들이 이곳에서 가을을 포착한다. 선암사가 품고 있는 역사, 이야기에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지만, 선암사를 품고 있는 자연의 배경이 아름다워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을 가득 채우는 무언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 '가을을 탄다'라는 말이 있듯 가을이 오면 쓸쓸함 또는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은 쓸쓸함을 남기는 '가을'이기보다는 풍부한 감정을 남기는 '가을'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움의 순간은 언제나 길지 않듯, 11월 중순인 지금. 가을이 서둘러 가기 전에 조계산의 숨겨진 가을의 순간을 발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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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맥의 끝자락, 조계산에는 가을이 숨어있다. - 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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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마애여래좌상, 불균형과 비대칭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고려 마애상
- 영월 주천강의 물살을 배경 삼아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독특한 마애불, 영월 마애여래좌상은 독특한 특성으로 인해 주목받았다. 불균형과 비대칭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고려 마애상 영월 마애여래좌상을 소개한다. 3.5m의 거대한 높이를 자랑하는 영월 마애여래좌상은 불균형한 모습과 비대칭의 특징이 크게 드러나는 독특한 마애불이다. 상체는 돋을새김 되어 바위에서 튀어나올 듯하지만 하체는 주로 선으로 새겨진 영월 마애여래좌상은 옷주름과 양 무릎, 발의 표현이 두드러지게 도식화되어있는 등 기존의 마애불에서 보기 어려운 개성 있는 모습을 자랑한다. 또한 상체에 비해 하체가 매우 크게 표현되어 있고, 상체는 길어 배경이 되는 돌처럼 불균형한 특성이 한눈에 보인다. 오른손과 왼손을 가슴께까지 올려 오른손은 손등을 보이고 왼손은 손바닥을 보이는 자세도 매우 독특하다. 전체적으로 비대칭적이고 불균형한 이 마애여래좌상은 그 모양과 박력 있는 크기, 고려 시대에 제작된 천년 마애불임을 감안하여 1982년에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영월 마애여래좌상의 옆에는 정자가 하나 있다. 이 정자는 조선 19대 임금인 숙종의 어제시를 봉안하고 있는 요선정으로, 요선계원들의 역사의식과 나라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정자다. 숙종의 어제시 현판은 원래 봉안되었던 청허루가 붕괴되자 일본인인 주천면 경찰지소장이 소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일본인이 숙종대왕의 어제시 현판을 소유하였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 요선계 계원들이 많은 돈을 주고 어제시 현판을 도로 사와 요선정에 새로이 봉안했다. 법당이 아닌 야외에 조성되어 누구에게나 노천 법당이 돼주었던 마애불은 언제나 편안하게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백덕산과 구룡산, 푸른 주천강의 물살을 배경으로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영월 마애여래좌상에서 이 특별한 고려 마애상만의 특징을 찬찬히 관찰해 보면 어떨까. 〇 위치 :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리 산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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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마애여래좌상, 불균형과 비대칭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고려 마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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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보경사, 신라의 천년고찰 속에서 가벼워지는 마음
- 절에 들어서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시간이 더디게 느껴진다. 천년이라는 세월을 지나온 천년고찰에서라면 그 마음가짐은 배가 된다. 아름다운 내연산 속에서 깊은 불심을 유지해온 포항 보경사를 만나보자. 보경사는 신라 시대의 승려인 지명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왔던 지명스님은 유학 중 어떤 도인으로부터 팔면보경을 받았는데, 이 팔면보경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주변국들의 침략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삼국을 통일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지명스님은 신라 진평왕과 함께 팔만보경을 내연산 아래의 큰 연못 속에 묻고 연못을 메운 뒤 팔만보경의 이름을 따 보경사를 지었다고 한다. 보경사는 신라 시대 때 지어진 뒤 고려 고종 때와 조선 숙종 때 중창되는 등 여러 차례 중수되어 그 특징들이 남아있다. 또한 오래된 역사에 담긴 여러 보물들과 유형문화재들이 많아 각 건물과 문화재마다 안내판을 통해 각각의 역사를 설명해 주고 있으니 하나씩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 보경사 경내의 많은 전각들 중에서도 바로 앞에 고려 오층석탑이 있는 적광전은 보경사 내에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오층석탑은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지붕돌받침이 3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석탑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3존불이 봉안되어 있는 유형문화재 제461호 대웅전과 원진국사의 생애와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 보물 제252호 원진국사비도 그냥 지나치면 아쉬울 보경사의 자랑이다.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린 포항 내연산은 12개의 폭포가 있는 계곡들을 품고 있어 사시사철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명산이다. 특히 보경사에서 출발하는 산행코스는 기암절벽이 아름다운 연산폭포를 거쳐가 인기가 많다. 내연산은 방문 시 문화재 구역 입장료 명목으로 소정의 입장료를 받으니, 내연산에 방문하면 꼭 보경사도 같이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보경사까지 오르는 길 내내 키 큰 금강송들이 머리 뒤를 덮어주고 시원한 계곡물이 바위 사이로 졸졸 흘러 도착하기도 전에 마음이 맑아지는 듯하다. 12개나 되는 폭포들을 볼 수 있는 내연산은 특히 2018년에 지어진 소금강 전망대의 전망이 유명하다. 기나긴 시간을 보낸 건물 내에서 매 계절마다 돌아오는 푸릇푸릇 한 숲을 생각하면 마음속 근심이 가벼워지는 듯하다. 보경사에서는 템플스테이와 산사체험 자원봉사를 해 볼 수 있으니 자연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길 원하는 방문객이라면 미리 예약하여 천년의 시간을 견딘 보경사를 느껴보자. 〇 위치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중산리 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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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보경사, 신라의 천년고찰 속에서 가벼워지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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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으뜸 서원, 상주 도남서원
- 상주는 낙동강을 가지고 있어 그 경관을 이용한 레크리에이션 시설이 많다. 그 시설가운데 역사문화재가 있으니 바로 상주 도남서원이다. 서원의 특성상 언덕 위나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데 도남서원의 경우는 강이 바로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1606년(선조 39년)에 상주시 도남동에 창건되었고 1676년(숙종 2년)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사액서원이 되었다는 것은 임금으로부터 편액을 받았는 이야기로 한마디로 조정에서 인정을 받은 서원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규모와 역사 등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71년 흥성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92년 지역 유림의 뜻을 모아서 강당 등을 건립하고 동, 서재를 지었다. 2002년부터는 대규모의 복원이 이루어져 지금까지 남아있다. 경내 구조로는 도정사, 손학재, 민구재, 정허루, 장판각, 전사청, 영귀문, 고직사, 일관당, 입덕문 등이 들어서있다. 해마다 음력 2월, 8월 하정일에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인물들에게 제사를 지낸다. 위 인물로는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노수신, 유성룡, 정경세, 이준 등 아홉선생이 있다. 이곳은 영남 으뜸 서원으로 추로지향의 위상을 조선시대부터 수 백년간 이어져오고 있는 곳이다. 이곳 안으로는 정문이 아닌 쪽문으로 입장을 할 수 있다. 막상 들어가면 넓은 마당이 반겨주는데 그 규모가 으리으리하다. 누각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전경을 시원하게 넓게 보인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 시설이 조성되어있어 역사문화재를 탐방하고 힐링하는 공간으로 이용해보길 바란다. 경북 상주시 도남2길 91 054-531-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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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으뜸 서원, 상주 도남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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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홍성 숨어있는 아름다운 여행지 여하정과 안회당
- 애국충절의 도시 충청남도 홍성을 방문하면 홍주 읍성은 반드시 찾아간다.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홍주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산책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홍주성 근처에 아름다운 연못과 고즈넉한 고택이 숨어있었다. 이제야 알게 된 것에 대한 후회와 안타까움이 들었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아주 기쁘다. 그곳은 바로 안회당과 여하정이다. 필자는 해외여행도 배낭여행을 즐기고 국내 여행에서도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가능하면 두 발로 도시와 마을 곳곳을 돌아다닌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여하정 연못은 필자가 충청남도 홍성 여행을 오면 항상 방문했던 홍주읍성 바로 옆에 있다. 연못에 연꽃이 피는 여름이 가장 아름다우리라 생각하지만, 여하정은 4계절 중 언제나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넓은 잔디광장은 이곳 여하정과 안회당을 더욱 좋은 장소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여하정과 안회당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안회당의 뒤뜰에 있는 작은 연못에 여하정이 있다. 이승우 관찰사가 1896년(고종 33)에 옛 청수정 자리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역대 홍주목사들이 관아 일을 돌보다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 정도로 풍경이 아름답고 분위기가 좋은 곳이라는 이야기다. 여하정에 있는 정자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6개의 육각형 나무 기둥 각각에는 오언시가 주련으로 2개씩 걸려 총 12개가 있다. 정자의 규모는 작지만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지니고 있다. 특히 여름에는 고목과 연못의 연꽃이 조화를 이루면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올여름 연꽃이 보기 좋게 꽃을 피우면 꼭 다시 와볼 생각이다. 여하정 바로 옆에 있는 안회당은 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의 중심지였던 홍주의 관청으로 지방관 (목사-조선 시대에 지방 행정 단위인 목을 다스리던 정삼품 외직 문관)이 근무했다. 22칸의 목조 기와 건물로, 처음 세워진 것은 숙종 4년(1678)에 때이며 한응필 목사가 고종 7년(1870)에 다시 크게 지었다고 한다. [논어]의 '노자안지, 봉우신지, 소자회지' 에서 인용해 '안회당'이라는 이름을 지었으며 '노인은 평안하게 모시고 벗은 믿음으로 대하고 아랫사람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새기면 새길수록 마음에 더욱 와닿은 뜻이다. 아랫사람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이 특히 마음에 더 와닿았다.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조그마한 지위와 권력을 갖게 되어 아랫사람들에게 갑질을 일삼는 사람이 있다. 안회당의 글귀를 그런 사람들이 되새긴다면 현대 사회의 갑질 문화는 사라질 것 같다고 생각한다. 봄꽃이 피기 시작할 시기가 오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 가족, 친구와 함께 봄이 오는 지금,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충청남도 홍성으로 주말 나들이 떠나 보기 바란다. ○ 위치 :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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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풍기지역의 지방사를 알려주는 풍기향교
- 영주는 선비정신으로 많이 유명하다. 특히 경북지역이 선비들이 많이 배출된 부분이 그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영주 풍기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유학을 가르치던 지방 교육기관으로써 성현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유교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가르치는 곳이다. 원래 금계리에 있는 임실마을 서쪽에 위치했으나 1542년(중종 37년)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이후 1692년(숙종 18년)에 옛 자리로 다시 이건했다가 1735년(영조 11년)에 다시 현 위치로 옮겼다. 6.25전쟁 때에는 불에 타 파괴되었다. 현재 이곳에 있는 건물들은 다시 복원하였다.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동무, 서무,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 제사를 지낼 때 제관이 머무르는 헌관실, 향교를 관리하던 교지기가 있었던 교직사,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이 있다. 대성전과 동,서무는 비교적 옛 모습을 갖추고 있다. 향교는 보통 전학후묘 배치를 둔다. 교육공간은 앞에 두고 제사 공간은 뒤에 두는 구조인데 풍기향교는 명륜당과 대성전이 서로 축을 달리하는 좌우로 배치가 되어있는 좌묘우학의 구조를 보이고 있다. 풍기향교는 다른 향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책들을 보관하고 있다. 그 중 풍기향교향안, 향교액안, 교안, 강학소계안 등의 책자들은 지방 향토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조선시대의 향교의 모습을 알려주는 풍기향교는 현재까지 남아 영주의 지방사를 알려주고 있다. ○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교촌리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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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풍기지역의 지방사를 알려주는 풍기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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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과 선비정신을 알려주는 영주 순흥향교
- 순흥향교는 순흥부 북쪽 금성에서 시작되었으나 단종복위운동으로 고을과 향교가 철폐되었다. 1683년(숙종 9년)에 다시 세워졌다. 순흥부 동쪽 위야동으로 이건되었다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워지게 되었다. 이곳에서 처음 보이는 보호수 200년이 된 느티나무가 맞이하고 있다. 순흥향교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방법으로 명륜당과 대성전이 앞뒤로 조성되어있다. 전면인 영귀루를 통과하면 명륜당이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대성전이 자리잡고 있다. 동무와 서무가 안마당 사이를 두고 배치되어있다. 위패를 모신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이며 겹처마 맞배지붕을 통해 골기와를 이은 형태이다.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가운데를 마루방으로 조성하였다. 마루방 양쪽에는 온돌방 1칸 반을 배치하였고 지붕은 대성전과 같이 겹처마 팔작지붕에 골기와 형태이다. 이곳 순흥지역의 지역 유림 수십명이 함께 고유례를 봉행하고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역 주변에는 소수서원이 자리잡고 있어 영주의 선비정신을 함께 엿볼 수 있다. 과거의 단종과 관련된 복위활동으로 지역자체가 존재의 기로에 섰으나 현재는 크게 선비의 정신을 알아볼 수 있는 관광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 347호로 지정되어있으며 경상북도향교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 위치: 경북 영주시 순흥면 청구길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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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과 선비정신을 알려주는 영주 순흥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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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고즈넉한 한옥의 멋 명재고택
-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가면, 천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 명재고택이 존재한다. 이곳은 한국의 예스러움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명재고택은 조선 숙종 때 이름을 알린 학자 명재 윤증 선생 고택으로, 당시 많은 관직에 제수되었지만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론의 수장이자, 조선 유학사에서 예학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대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명재고택은 그에게 배움을 받으면서 성장한 제자들이 스승을 모시기 위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타깝게도 윤증 선생은 명재고택에 살지 않고 바로 옆 작은 초가집에서 거주했다고 한다. 명재고택을 방문하면 수많은 항아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품격 있는 고택의 모습은 과거 논산에서 거주했던 양반 가옥의 대표적인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명재고택은 사랑채와 안채가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지만 솟을 대문은 어딜 봐도 없다. 이런 이유에서 명재고택은 어디에서 감상해도 막힘없는 확 트인 공간을 자랑한다. 수많은 선비들이 이곳에서 “시”를 읽고 “공부”를 했을 것을 상상하니, 이 분위기에 취해 책을 읽으며 산책을 즐기고 싶어진다. 사랑채 뒤쪽에는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당”이 나온다. 그리고 명재고택 안채로 들어가 구경을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이곳은 윤증 선생의 후손이 생활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출입은 참아야 한다. 하지만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내부 구경도 가능한 경우가 가끔 있다. 400년 이상 된 보호수를 기준으로 명재고택은 사계절 내내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방문한 촬영 작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병사들이 가지런히 훈련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도열한 모습은 최고의 볼거리다. 국가 민속문화재 제190호로 지정된 논산 명재고택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옥녀 탄금형이라고 할 정도로 풍수지리학 적으로 최고의 장소라고 한다. 그리고 고택이 자리한 뒷산은 해발 252m의 오린 봉으로 맑은 공기가 명재고택의 상쾌함을 빛나게 한다. 주말여행지 논산을 계획하고 있다면 한 번씩 방문하셔서 SNS 인생 사진을 남겨보셔도 좋을 것 이다. ○ 위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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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고즈넉한 한옥의 멋 명재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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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단종복위를 꿈꾸었던 금성대군, 영주금성대군신단
- 영주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비운의 왕 조선 단종과 관련된 역사 유적지가 있다. 바로 영주금성대군신단이다. 이곳에 대한 소개를 하기 전 조금은 길수도 있는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선의 단종은 그의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목숨을 잃었다. 그 사이에서 정치적인 싸움이 났는데 바로 김종서 장군과 수양대군의 싸움이다. 결국엔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죽이고 단종을 압박해 왕명으로 중신들을 모이게 했고 영의정 황보인, 이조판서 조극관과 찬성, 이양 등을 궐문에서 죽이고 우의정 정분 등 많은 사람을 유배시켰다. 또한 동생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시켜 죽게 만들었다. 이를 계유정난이라 한다. 영의정부사, 이조, 병조판서, 내외병마도통사 등을 겸하면서 좌의정에는 정인지를 우의정에는 한확을 임명하였다. 1455년에는 단종을 왕위에서 내리게 하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단종은 왕위를 물려주었고 상왕으로 빠졌으나 조선시대는 유학이 뿌리를 내렸기에 많은 이들에 의해 단종 복위 시도가 일어난다. 대표적인 것이 사육신 사건이다. 사육신은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류성원이 주도하여 일어났고 사전에 발각되어 관련자의 가족까지 모두 몰살되었다. 이처럼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 가운데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였던 사건이 있었다. 금성대군은 세종 임금의 여섯째 아들이고 단종의 숙부이다. 이러한 시도는 실패하였다. 관노의 밀고에 의해 관군의 습격을 받아 순흥부는 폐부가 되었다. 이후 200년이 지나고 1719년(숙종 45년)에 순흥인 이기륭이 단소를 설치하였고 1742년(영조 18년)에 경상감사 심성회에 의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주변에는 영주의 자랑인 소수서원이 자리 잡고 있어 주변에서 둘러보는 것도 좋다. ○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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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단종복위를 꿈꾸었던 금성대군, 영주금성대군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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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박팽년의 후손들이 있는 곳, 육신사 마을
- 조선시대는 왕권 다툼의 이야기가 많다. 그중 어린 왕 단종에게 왕권을 빼앗아 왕이 된 세조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단종의 복위를 꿈꾼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를 일컬어 사육신이라 한다. 그중 박팽년의 현손인 박계창이 꿈속에서 나머지 다섯 인물을 보아 그 후 함께 제사를 지내게 됐다. 하빈사를 지어 제사를 지내다가 숙종 20년에 낙빈이란 현액을 하사받게 되었고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성대원군의 서원 철폐형으로 낙빈사가 서원과 철거되었지만 1924년 낙빈서원이 재건되었다. 육신사를 찾기 위해 마을 입구를 들어설 때 충심을 알 수 있는 문인 충절문을 지나게 된다.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는 곳이다. 이곳은 하빈면의 깊숙한 곳으로 묘골이라 칭하는데 지도상으로 봐도 산으로 둘러져있는 곳이다. 어떻게 보면 박팽년 가문은 삼족을 멸하게 되었고 여성들은 관노로 이끌리게 되었다. 며느리가 임신한 상태여서 아들이면 죽이고 딸이면 관노로 삼게 되는 상황에 친정의 도움으로 아들을 노비의 딸과 바꿔치기해 멸족을 피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이곳은 사람을 잘 볼 수 없는 구석진 곳이라 한적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에 이곳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조용한 육신사를 둘러보고 돌아간다. 이곳은 조용한 집성촌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구시와 달성군은 국비, 시비, 군비를 합해 한옥을 개축하고 기념관을 설립해 관광지로 조성했다. 육신사는 태고정과 도곡재에서 그 유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도곡재는 대사성 서정 박문현이 살림집으로 지은 건물인데 1980년대 도곡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하면서 도곡재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박종우는 인조 때 사람으로 한강 정구의 문인이다. 한강 정구를 알아보려면 성주에 있는 회연서원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 위치: 대구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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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맥의 끝자락, 조계산에는 가을이 숨어있다. - 선암사
- 소백산맥의 끝자락, 조계산에는 가을이 숨어있다. 알록달록한 옷으로 바꿔 입은 나뭇잎과 투명하고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이곳은 전라남도 순천에 위치한 선암사로 가는 길이다. 조계산 도립공원에서 선암사로 도보로 이동하다 보면, 가을의 파란 하늘과 알록달록한 자연의 조화가 눈에 들어온다. 절반쯤 걷다 보면 돌다리가 하나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승선교'이다.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 위로 아치형의 돌다리는 조선 숙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본래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겠지만, 이제는 자연의 하나로 녹아든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그 뒤로 보이는 강선루의 한국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져 더욱 가을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승선교 뒤로 언뜻 보였던 강선루를 지나 선암사로 가다 보면 그 근처에 이곳을 오고 가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쌓은 돌 탑이 곳곳에 있다. 무엇을 바라며 돌멩이를 쌓았을지, 얼마나 많은 소원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선암사 입구 오른쪽에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그곳을 지키고 있는데, 바닥에 떨어진 은행 잎은 마치 노란색 카펫을 바닥에 깔아 놓은 것만 같다. 도시에서는 이처럼 울창한 나무를 쉽게 볼 수 없어 많은 방문객들이 이곳에서 가을을 포착한다. 선암사가 품고 있는 역사, 이야기에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지만, 선암사를 품고 있는 자연의 배경이 아름다워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을 가득 채우는 무언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 '가을을 탄다'라는 말이 있듯 가을이 오면 쓸쓸함 또는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은 쓸쓸함을 남기는 '가을'이기보다는 풍부한 감정을 남기는 '가을'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움의 순간은 언제나 길지 않듯, 11월 중순인 지금. 가을이 서둘러 가기 전에 조계산의 숨겨진 가을의 순간을 발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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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마애여래좌상, 불균형과 비대칭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고려 마애상
- 영월 주천강의 물살을 배경 삼아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독특한 마애불, 영월 마애여래좌상은 독특한 특성으로 인해 주목받았다. 불균형과 비대칭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고려 마애상 영월 마애여래좌상을 소개한다. 3.5m의 거대한 높이를 자랑하는 영월 마애여래좌상은 불균형한 모습과 비대칭의 특징이 크게 드러나는 독특한 마애불이다. 상체는 돋을새김 되어 바위에서 튀어나올 듯하지만 하체는 주로 선으로 새겨진 영월 마애여래좌상은 옷주름과 양 무릎, 발의 표현이 두드러지게 도식화되어있는 등 기존의 마애불에서 보기 어려운 개성 있는 모습을 자랑한다. 또한 상체에 비해 하체가 매우 크게 표현되어 있고, 상체는 길어 배경이 되는 돌처럼 불균형한 특성이 한눈에 보인다. 오른손과 왼손을 가슴께까지 올려 오른손은 손등을 보이고 왼손은 손바닥을 보이는 자세도 매우 독특하다. 전체적으로 비대칭적이고 불균형한 이 마애여래좌상은 그 모양과 박력 있는 크기, 고려 시대에 제작된 천년 마애불임을 감안하여 1982년에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영월 마애여래좌상의 옆에는 정자가 하나 있다. 이 정자는 조선 19대 임금인 숙종의 어제시를 봉안하고 있는 요선정으로, 요선계원들의 역사의식과 나라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정자다. 숙종의 어제시 현판은 원래 봉안되었던 청허루가 붕괴되자 일본인인 주천면 경찰지소장이 소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일본인이 숙종대왕의 어제시 현판을 소유하였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 요선계 계원들이 많은 돈을 주고 어제시 현판을 도로 사와 요선정에 새로이 봉안했다. 법당이 아닌 야외에 조성되어 누구에게나 노천 법당이 돼주었던 마애불은 언제나 편안하게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백덕산과 구룡산, 푸른 주천강의 물살을 배경으로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영월 마애여래좌상에서 이 특별한 고려 마애상만의 특징을 찬찬히 관찰해 보면 어떨까. 〇 위치 :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리 산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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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마애여래좌상, 불균형과 비대칭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고려 마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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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보경사, 신라의 천년고찰 속에서 가벼워지는 마음
- 절에 들어서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시간이 더디게 느껴진다. 천년이라는 세월을 지나온 천년고찰에서라면 그 마음가짐은 배가 된다. 아름다운 내연산 속에서 깊은 불심을 유지해온 포항 보경사를 만나보자. 보경사는 신라 시대의 승려인 지명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왔던 지명스님은 유학 중 어떤 도인으로부터 팔면보경을 받았는데, 이 팔면보경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주변국들의 침략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삼국을 통일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지명스님은 신라 진평왕과 함께 팔만보경을 내연산 아래의 큰 연못 속에 묻고 연못을 메운 뒤 팔만보경의 이름을 따 보경사를 지었다고 한다. 보경사는 신라 시대 때 지어진 뒤 고려 고종 때와 조선 숙종 때 중창되는 등 여러 차례 중수되어 그 특징들이 남아있다. 또한 오래된 역사에 담긴 여러 보물들과 유형문화재들이 많아 각 건물과 문화재마다 안내판을 통해 각각의 역사를 설명해 주고 있으니 하나씩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 보경사 경내의 많은 전각들 중에서도 바로 앞에 고려 오층석탑이 있는 적광전은 보경사 내에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오층석탑은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지붕돌받침이 3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석탑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3존불이 봉안되어 있는 유형문화재 제461호 대웅전과 원진국사의 생애와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 보물 제252호 원진국사비도 그냥 지나치면 아쉬울 보경사의 자랑이다.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린 포항 내연산은 12개의 폭포가 있는 계곡들을 품고 있어 사시사철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명산이다. 특히 보경사에서 출발하는 산행코스는 기암절벽이 아름다운 연산폭포를 거쳐가 인기가 많다. 내연산은 방문 시 문화재 구역 입장료 명목으로 소정의 입장료를 받으니, 내연산에 방문하면 꼭 보경사도 같이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보경사까지 오르는 길 내내 키 큰 금강송들이 머리 뒤를 덮어주고 시원한 계곡물이 바위 사이로 졸졸 흘러 도착하기도 전에 마음이 맑아지는 듯하다. 12개나 되는 폭포들을 볼 수 있는 내연산은 특히 2018년에 지어진 소금강 전망대의 전망이 유명하다. 기나긴 시간을 보낸 건물 내에서 매 계절마다 돌아오는 푸릇푸릇 한 숲을 생각하면 마음속 근심이 가벼워지는 듯하다. 보경사에서는 템플스테이와 산사체험 자원봉사를 해 볼 수 있으니 자연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길 원하는 방문객이라면 미리 예약하여 천년의 시간을 견딘 보경사를 느껴보자. 〇 위치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중산리 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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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으뜸 서원, 상주 도남서원
- 상주는 낙동강을 가지고 있어 그 경관을 이용한 레크리에이션 시설이 많다. 그 시설가운데 역사문화재가 있으니 바로 상주 도남서원이다. 서원의 특성상 언덕 위나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데 도남서원의 경우는 강이 바로 보이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1606년(선조 39년)에 상주시 도남동에 창건되었고 1676년(숙종 2년)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사액서원이 되었다는 것은 임금으로부터 편액을 받았는 이야기로 한마디로 조정에서 인정을 받은 서원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규모와 역사 등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71년 흥성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92년 지역 유림의 뜻을 모아서 강당 등을 건립하고 동, 서재를 지었다. 2002년부터는 대규모의 복원이 이루어져 지금까지 남아있다. 경내 구조로는 도정사, 손학재, 민구재, 정허루, 장판각, 전사청, 영귀문, 고직사, 일관당, 입덕문 등이 들어서있다. 해마다 음력 2월, 8월 하정일에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인물들에게 제사를 지낸다. 위 인물로는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노수신, 유성룡, 정경세, 이준 등 아홉선생이 있다. 이곳은 영남 으뜸 서원으로 추로지향의 위상을 조선시대부터 수 백년간 이어져오고 있는 곳이다. 이곳 안으로는 정문이 아닌 쪽문으로 입장을 할 수 있다. 막상 들어가면 넓은 마당이 반겨주는데 그 규모가 으리으리하다. 누각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전경을 시원하게 넓게 보인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 시설이 조성되어있어 역사문화재를 탐방하고 힐링하는 공간으로 이용해보길 바란다. 경북 상주시 도남2길 91 054-531-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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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홍성 숨어있는 아름다운 여행지 여하정과 안회당
- 애국충절의 도시 충청남도 홍성을 방문하면 홍주 읍성은 반드시 찾아간다.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홍주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산책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홍주성 근처에 아름다운 연못과 고즈넉한 고택이 숨어있었다. 이제야 알게 된 것에 대한 후회와 안타까움이 들었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아주 기쁘다. 그곳은 바로 안회당과 여하정이다. 필자는 해외여행도 배낭여행을 즐기고 국내 여행에서도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가능하면 두 발로 도시와 마을 곳곳을 돌아다닌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여하정 연못은 필자가 충청남도 홍성 여행을 오면 항상 방문했던 홍주읍성 바로 옆에 있다. 연못에 연꽃이 피는 여름이 가장 아름다우리라 생각하지만, 여하정은 4계절 중 언제나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드넓은 잔디광장은 이곳 여하정과 안회당을 더욱 좋은 장소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여하정과 안회당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안회당의 뒤뜰에 있는 작은 연못에 여하정이 있다. 이승우 관찰사가 1896년(고종 33)에 옛 청수정 자리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역대 홍주목사들이 관아 일을 돌보다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 정도로 풍경이 아름답고 분위기가 좋은 곳이라는 이야기다. 여하정에 있는 정자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6개의 육각형 나무 기둥 각각에는 오언시가 주련으로 2개씩 걸려 총 12개가 있다. 정자의 규모는 작지만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지니고 있다. 특히 여름에는 고목과 연못의 연꽃이 조화를 이루면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올여름 연꽃이 보기 좋게 꽃을 피우면 꼭 다시 와볼 생각이다. 여하정 바로 옆에 있는 안회당은 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의 중심지였던 홍주의 관청으로 지방관 (목사-조선 시대에 지방 행정 단위인 목을 다스리던 정삼품 외직 문관)이 근무했다. 22칸의 목조 기와 건물로, 처음 세워진 것은 숙종 4년(1678)에 때이며 한응필 목사가 고종 7년(1870)에 다시 크게 지었다고 한다. [논어]의 '노자안지, 봉우신지, 소자회지' 에서 인용해 '안회당'이라는 이름을 지었으며 '노인은 평안하게 모시고 벗은 믿음으로 대하고 아랫사람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새기면 새길수록 마음에 더욱 와닿은 뜻이다. 아랫사람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이 특히 마음에 더 와닿았다.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조그마한 지위와 권력을 갖게 되어 아랫사람들에게 갑질을 일삼는 사람이 있다. 안회당의 글귀를 그런 사람들이 되새긴다면 현대 사회의 갑질 문화는 사라질 것 같다고 생각한다. 봄꽃이 피기 시작할 시기가 오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 가족, 친구와 함께 봄이 오는 지금,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충청남도 홍성으로 주말 나들이 떠나 보기 바란다. ○ 위치 :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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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홍성 숨어있는 아름다운 여행지 여하정과 안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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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풍기지역의 지방사를 알려주는 풍기향교
- 영주는 선비정신으로 많이 유명하다. 특히 경북지역이 선비들이 많이 배출된 부분이 그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영주 풍기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유학을 가르치던 지방 교육기관으로써 성현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유교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을 가르치는 곳이다. 원래 금계리에 있는 임실마을 서쪽에 위치했으나 1542년(중종 37년)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이후 1692년(숙종 18년)에 옛 자리로 다시 이건했다가 1735년(영조 11년)에 다시 현 위치로 옮겼다. 6.25전쟁 때에는 불에 타 파괴되었다. 현재 이곳에 있는 건물들은 다시 복원하였다.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동무, 서무,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 제사를 지낼 때 제관이 머무르는 헌관실, 향교를 관리하던 교지기가 있었던 교직사,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이 있다. 대성전과 동,서무는 비교적 옛 모습을 갖추고 있다. 향교는 보통 전학후묘 배치를 둔다. 교육공간은 앞에 두고 제사 공간은 뒤에 두는 구조인데 풍기향교는 명륜당과 대성전이 서로 축을 달리하는 좌우로 배치가 되어있는 좌묘우학의 구조를 보이고 있다. 풍기향교는 다른 향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책들을 보관하고 있다. 그 중 풍기향교향안, 향교액안, 교안, 강학소계안 등의 책자들은 지방 향토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조선시대의 향교의 모습을 알려주는 풍기향교는 현재까지 남아 영주의 지방사를 알려주고 있다. ○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교촌리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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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풍기지역의 지방사를 알려주는 풍기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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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과 선비정신을 알려주는 영주 순흥향교
- 순흥향교는 순흥부 북쪽 금성에서 시작되었으나 단종복위운동으로 고을과 향교가 철폐되었다. 1683년(숙종 9년)에 다시 세워졌다. 순흥부 동쪽 위야동으로 이건되었다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워지게 되었다. 이곳에서 처음 보이는 보호수 200년이 된 느티나무가 맞이하고 있다. 순흥향교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방법으로 명륜당과 대성전이 앞뒤로 조성되어있다. 전면인 영귀루를 통과하면 명륜당이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대성전이 자리잡고 있다. 동무와 서무가 안마당 사이를 두고 배치되어있다. 위패를 모신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이며 겹처마 맞배지붕을 통해 골기와를 이은 형태이다.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가운데를 마루방으로 조성하였다. 마루방 양쪽에는 온돌방 1칸 반을 배치하였고 지붕은 대성전과 같이 겹처마 팔작지붕에 골기와 형태이다. 이곳 순흥지역의 지역 유림 수십명이 함께 고유례를 봉행하고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역 주변에는 소수서원이 자리잡고 있어 영주의 선비정신을 함께 엿볼 수 있다. 과거의 단종과 관련된 복위활동으로 지역자체가 존재의 기로에 섰으나 현재는 크게 선비의 정신을 알아볼 수 있는 관광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 347호로 지정되어있으며 경상북도향교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 위치: 경북 영주시 순흥면 청구길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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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과 선비정신을 알려주는 영주 순흥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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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단종복위를 꿈꾸었던 금성대군, 영주금성대군신단
- 영주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비운의 왕 조선 단종과 관련된 역사 유적지가 있다. 바로 영주금성대군신단이다. 이곳에 대한 소개를 하기 전 조금은 길수도 있는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선의 단종은 그의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목숨을 잃었다. 그 사이에서 정치적인 싸움이 났는데 바로 김종서 장군과 수양대군의 싸움이다. 결국엔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죽이고 단종을 압박해 왕명으로 중신들을 모이게 했고 영의정 황보인, 이조판서 조극관과 찬성, 이양 등을 궐문에서 죽이고 우의정 정분 등 많은 사람을 유배시켰다. 또한 동생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시켜 죽게 만들었다. 이를 계유정난이라 한다. 영의정부사, 이조, 병조판서, 내외병마도통사 등을 겸하면서 좌의정에는 정인지를 우의정에는 한확을 임명하였다. 1455년에는 단종을 왕위에서 내리게 하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단종은 왕위를 물려주었고 상왕으로 빠졌으나 조선시대는 유학이 뿌리를 내렸기에 많은 이들에 의해 단종 복위 시도가 일어난다. 대표적인 것이 사육신 사건이다. 사육신은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류성원이 주도하여 일어났고 사전에 발각되어 관련자의 가족까지 모두 몰살되었다. 이처럼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 가운데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였던 사건이 있었다. 금성대군은 세종 임금의 여섯째 아들이고 단종의 숙부이다. 이러한 시도는 실패하였다. 관노의 밀고에 의해 관군의 습격을 받아 순흥부는 폐부가 되었다. 이후 200년이 지나고 1719년(숙종 45년)에 순흥인 이기륭이 단소를 설치하였고 1742년(영조 18년)에 경상감사 심성회에 의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주변에는 영주의 자랑인 소수서원이 자리 잡고 있어 주변에서 둘러보는 것도 좋다. ○ 위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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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단종복위를 꿈꾸었던 금성대군, 영주금성대군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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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행 동래문화유적지 동래부동헌
- 부산은 해운대를 비롯해 아름다운 해변이 많은 곳으로 젊은이들이 많이 방문하여 젊음의 도시라고 불린다. 그렇다고 부산에 아름다운 바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문화유적지가 많기도 하다. 아이들과 함께 가면 좋을 부산의 여행지 동래부동헌을 소개한다.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위치한 동래부동헌에는 동래시장이 있다.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참 많은 전통시장인 동래시장 근처에는 박차정의사 생가, 복천동고분, 동래장관청 등 동래문화유적지가 모여 있다. 동래부동헌과 함께 연계해서 방문하면 우리의 역사를 알아가기에 아주 좋다. 동래부동헌은 조선시대 수령의 집무공간으로 아헌이라고 한다. 객사 다음으로 중요한 관아시설로 이청, 무청, 향청 등 각종 관아 건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곳이었다. 동래는 일본과 차 접경지로 한반도 제일의 관방이자 전략 요충지로 중시된 만큼 일찍부터 읍성과 관아가 설치되었고, 조선시대에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더욱 중시되어 태조 때부터 진을 두고 병마사가 판현사를 겸하도록 하였고, 명종 12년(1547)에 도호부로 승격되어 정 3품 당상관으로 부사를 임명하였다고 한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부산(동래)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크게 인식되어 효종 6년(1655) 경주진관에 속해 있던 것을 독진으로 독립시키고, 관아도 대대적으로 복구하였다. 동래부 관아는 대원군 집권기까지 빈번히 중. 개축되다가 고종 3년(1866) 병인양요를 겪고, 부사 정현덕의 주도로 일본의 침공에 대비해서 읍성과 관아를 대대적으로 증. 개축하였다. 동헌의 중심 건물인 충신당은1636년(인조 14) 동래부사 정양필이 창건하여 1711년(숙종 37) 부사 이정신이 충신당이라는 편액을 붙인 뒤로 충신당이라 일컬어졌는데, 조선시대 말까지 동래부와 동래관찰사의 아헌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에는 동래군청 건물로 사용되었고, 1973년 동래군이 양산군에 편입되면서 양산군보건소 동부지소로 사용되다가 1977년 부산직할시에 매입되어 해체. 복원후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동래부동헌은 조선시대 부산(동래)의 행정, 국방, 외교, 교역 업무를 도맡았던 제일 관방의 위상을 함축하는 관아시설일 뿐 아니라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한 개혁성론에 따라 근대적 읍성의 축조가 최초로 구현되는 등 조선시대 관방역사와 문화를 함축하고 있는 역사적 장소다. 아이들과 함께 부산 여행을 떠난다면 꼭 한번 방문해 보기 바란다. ○ 위치: 동래부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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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행 동래문화유적지 동래부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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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박팽년의 후손들이 있는 곳, 육신사 마을
- 조선시대는 왕권 다툼의 이야기가 많다. 그중 어린 왕 단종에게 왕권을 빼앗아 왕이 된 세조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단종의 복위를 꿈꾼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하위지, 유응부를 일컬어 사육신이라 한다. 그중 박팽년의 현손인 박계창이 꿈속에서 나머지 다섯 인물을 보아 그 후 함께 제사를 지내게 됐다. 하빈사를 지어 제사를 지내다가 숙종 20년에 낙빈이란 현액을 하사받게 되었고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성대원군의 서원 철폐형으로 낙빈사가 서원과 철거되었지만 1924년 낙빈서원이 재건되었다. 육신사를 찾기 위해 마을 입구를 들어설 때 충심을 알 수 있는 문인 충절문을 지나게 된다.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는 곳이다. 이곳은 하빈면의 깊숙한 곳으로 묘골이라 칭하는데 지도상으로 봐도 산으로 둘러져있는 곳이다. 어떻게 보면 박팽년 가문은 삼족을 멸하게 되었고 여성들은 관노로 이끌리게 되었다. 며느리가 임신한 상태여서 아들이면 죽이고 딸이면 관노로 삼게 되는 상황에 친정의 도움으로 아들을 노비의 딸과 바꿔치기해 멸족을 피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이곳은 사람을 잘 볼 수 없는 구석진 곳이라 한적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에 이곳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조용한 육신사를 둘러보고 돌아간다. 이곳은 조용한 집성촌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사진찍기 좋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구시와 달성군은 국비, 시비, 군비를 합해 한옥을 개축하고 기념관을 설립해 관광지로 조성했다. 육신사는 태고정과 도곡재에서 그 유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도곡재는 대사성 서정 박문현이 살림집으로 지은 건물인데 1980년대 도곡 박종우의 재실로 사용하면서 도곡재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박종우는 인조 때 사람으로 한강 정구의 문인이다. 한강 정구를 알아보려면 성주에 있는 회연서원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 위치: 대구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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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박팽년의 후손들이 있는 곳, 육신사 마을